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빠뜨리지 않고 하는 연례행사 중 하나는 다이어트다. 늘 시도하지만, 대부분은 늘 실패한다. 인생을 통틀어 딱 세 번 성공한 적이 있다. 임신기간 동안 20kg 이상 불어난 체중을 출산 직후 한두 달 동안 극기 훈련하듯 감량했던 세 차례의 경험은 제외한 거다.
출산 후에는 수유를 하기에 먹는 것을 줄이니 정말 쑥쑥 빠졌다. 물론 운동도 했다. <이소라의 다이어트 체조>를 매일 두 차례씩 했다. 덕분에 출산휴가 3개월을 마치고 복귀할 때는 임신 전 몸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조리보다 살 빼기에 집착한 탓에 출산 후 오한을 심하게 느끼고 찬 것을 잘 못 먹는 체질로 변신해버렸다.
인생 최초 다이어트는 대학 새내기 시절 여름방학 때 경험했다. 고3 시절 통통한 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대학생이 되었더니 미팅을 나가도 늘 찬밥이었다. 미팅 단골 짝꿍이었던 기숙사 룸메이트가 호리호리 만찢녀 분위기라서 과체중에 불과한 내가 더 커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이어트로 5~6kg 남짓을 빼서 젖살이 좀 빠진 채로 2학기를 맞이하니 사람들이 좀 더 친절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감을 얻어 미팅도 더 적극적으로 나갔다. 하지만 살만 빼서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아담한 키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 번은 타학교 의대생과 소개팅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미스코리아가 나온 직후라 장신의 미녀를 기대하고 나온 상대방에게 제대로 무시를 당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두 번째 다이어트는 대학 졸업 후 수험기간 동안이었다. 함께 취업준비를 하던 친구와 나는 외모가 닮아서 처음 보는 선배들은 늘 헷갈려했다. 하지만 몇 번 보고 나면 쉽게 구분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다른 체격 때문이었다. 엄청 마른 체형의 친구와 달리 나는 표준체형(?)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비교당하는 데 지쳤던 나는 그 친구처럼 한 번 말라보겠노라고 결심했다. 수험기간이라 새벽 기상, 한밤중 취침, 매일 12시간 이상 공부 등 강행군을 이어가던 때였지만 한창 건강한 20대라서 가능했다. 새 모이만큼 밥을 먹고, 야식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하루는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과 늦은 밤 삼겹살 모임이 있었는데, 정말 단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참, 대단한 20대였다.
운동도 병행했다. 공부하던 곳 근처에 있던 소형 운동장을 매일 밤 10바퀴씩 뛰었다. 훌라후프와 줄넘기를 천 개 이상씩 했다. 컨디션 좋은 날에는 3천 개쯤 거뜬히 해내기도 했다. 연일 이어지는 운동 강행군에 공부하다 졸기 일쑤였지만, 꽤 오랫동안 운동을 이어갔다.
공부 대신 운동에 너무 전념해서인지 그 해 시험은 낙방했다. 하지만 극기훈련 같은 고강도 다이어트 결과, 인생 최저 체중을 얻었다. 엄마는 뼈밖에 안 남아서 눈 밖에 안 보인다며 안타까워하셨지만, 그 해 맞선으로 만났던 현재의 남편은 내 외모에 꽤나 만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다이어트는 3년 전이었다.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온 가족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다. 어렵사리 마련한 자리였기에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하와이에서 비키니를 입겠다는 일념으로 피트니스에 등록했다. 불굴의 의지로 근력운동을 해도 쉽사리 근육이 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체지방은 쑥쑥 빠져서 하와이에 도착했을 땐,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지금 또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드니 몸만 풍만해지는 게 아니다.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여유로워진 마음만큼 나 자신에게 너무 관대해진다. 곧 있으면 반백살인데, 뭐하러 살을 빼야 하나? 이가 튼튼할 때 조금이라도 더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안 먹는다고 스트레스받으면 일이나 공부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끝도 없이 떠오른다. 딸내미들과 4주 전에 시작한 다이어트 시즌 1이 이틀 후면 종료다. 먹지 말아야지 하니까 평소에는 눈길도 안 줬던 것들이 더 당긴다. 결국 이틀 연속 무너졌고, 3주 동안 조금씩 빼왔던 체중이 거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다이어트 버디들인 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준다. 목표치를 낮추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번 시즌을 잘 넘기면 시즌 2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다이어트는 식이조절보다 <적정 운동을 꾸준히 하기>가 핵심이다. 건강한 꽃 중년을 위하여, 운동하러 나가려고했는데... 야속하게도 비가 온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