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자 Nov 22. 2020

학원강사에서 기자가 되다

평화방송 입사 비하인드 스토리

대학 졸업 후, 나는 학원강사로 일했다. 대학 때부터 알바로 해오던 일이라 익숙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풀로 가르쳤다. 처음엔 국어만 가르치다가 나중엔 영어도 가르쳤다. 영어교육학 전공이지만 국어국문학을 복수전공해서, 학원 상황에 따라 두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쳤지만 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언론인이었다. 아나운서도 되고 싶고, 기자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오후에 출근해 밤까지 학원에 있어야 하는 만큼, 오전 시간을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아침에 영어학원과 요가학원에 다녔다. 아나운서를 하든, 기자를 하든, 영어 실력과 유연한 몸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다니며 방송 감각을 익혔다. 기자 지망생들과 스터디도 꾸렸다. 함께 신문을 읽고, 상식을 공부하고, 논술도 썼다. 바쁘지만 꿈이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학원강사이자 언론인 지망생으로 살아가던 4월의 어느 날, 대교 공채가 났다. 대교는 눈높이수학 학습지를 운영하는 회사로 브랜드 파워가 탄탄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눈높이수학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어 대교가 친근했다. 대교는 어린이TV 케이블방송을 갖고 있어, 교육과 방송이라는 나의 관심사와도 딱 맞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면접에 올라갔다.


대교 공채가 한창이던 무렵, 평화방송 공채가 났다. 아나운서, 기자, PD까지 두루 뽑아 언론인 지망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나 역시 평화방송에 관심이 갔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종교와 방송 일을 접목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대교 공채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원해보기로 했다. 아나운서와 기자 중에 고민하다가, 기자로 원서를 냈다.


얼마 후 나는 대교에 최종 합격했다. 정말 기뻤다. 일하던 학원에 사직서를 내고 합숙연수에 들어갔다. 연수에 들어간 지 며칠 째였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화방송이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니 며칠 후 시험과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대교는 이미 최종 합격해서 연수 중이었고, 평화방송은 이제 겨우 1차를 통과한 상황. 밤잠을 못자고 고민한 끝에 평화방송 시험을 보기로 했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대교에 사직서를 냈다. 인사 담당자는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나는 사직 처리를 해달라고 말했다. 인사 담당자는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연수를 받은 며칠 간의 월급이었다. 마음이 묘했다.


트렁크를 끌고 집에 돌아와서 평화방송 시험과 면접 준비에 돌입했다. 평화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시사 이슈와 성경 지식 등 예상 질문을 뽑아 답변을 준비했다. 시험은 하루종일 진행됐다. 인성검사, 논술, 작문, 리포팅, 면접까지 떨리지만 자신감 있게 임했다. 며칠 후 임원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집에서 합격 사실을 확인하고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5개월 만에 평화방송 기자가 됐다. 입사한 날에 알았다. 나는 평화방송 보도국 역사상 최초의 여기자였다. 내 책상 위에는 분홍색 장미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보도국 선배들이 입사를 축하한다며 마련해준 선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