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전 독서인가?
북클럽에서 매주 6주간의 일정으로 일리아스를 읽고 있다. 옛날이야기 그것도 온갖 이해하기 힘든 신과 영웅들의 전쟁 이야기를 보노라면 조금은 의아하고, 지루한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책은 벽돌처럼 두껍고, 현대 판타지물에 비해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수 천년이 지난 고대인의 이야기를 왜 읽고 있는지 현타가 오기도 할 것이다. 역시 이 책은 문사철들이나 읽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최첨단 기술과 변화무쌍한 21세기에 이런 오래되고 재미없는 책을 왜 읽자고 하는 것일까?
일리아스를 읽다 보면 글을 쓴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이름을 분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들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줄 나열된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이고, 무슨 의미에서 이런 나열들이 반복되는지 알 수기가 어렵다. 이런 작품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고대인이 아닌 현대인이고, 저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일리아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리스 신화, 고대 그리스와 근동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인들의 사상과 세계관 등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사전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이해 없이 그냥 이 책을 읽는 것은 지도 없이 낯선 지역을 방문했을 때와 같은 당황스러움과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지식들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온라인 백과나 각종 블로그나 클럽에는 이미 이 고전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클릭 몇 번이면 모든 신들에 대한 배경 이야기, 일리아스 얽힌 여러 지식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고전이 어렵다는 사람들의 고민은 고전이 실제로 읽기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고전을 읽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이 귀찮다는 하소연이 아닐까?
그리고 세상에 어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좋은 것들이 있었던가? 입에 쓴 음식이 몸에도 좋다.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들은 인스턴트가 아니라 영양이 풍부한 그리고 다소 거친 음식들이다. 이것은 음악, 예술, 체육과 같은 분야에서도 동일하다. 충실한 기본기나 자세를 배우지 못하고 기교만 배운 사람은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절대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거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결과물을 낼 수 없다. 이것은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본기가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이르는 경우는 있지만, 그 마지막이 해피엔딩이 되는 경우는 결단코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고전은 시대를 걸쳐 선별되고 집대성되어 온 하나의 거대한 체계이다. 이런 책들은 시대적으로 앞선 것의 장점을 인용하고, 본받고, 계승하고, 극복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러므로 이전 시대의 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양 문화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시대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일리아스를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알듯이 서양 최초의 문서화된 서사시이다. 일리아스를 모르고서는 서양 문학과 사상을 이해는 것이 난해할 수 있다. 반대로 고전 중의 고전인 일리아스를 읽고 이해하게 되면 그 이후의 고전 작품들의 계열이 정리되고, 이해가 쉬워지고 깊이 있게 이해할 있게 된다.
모든 고전들의 고전은 희랍(그리스)과 로마의 작품들을 기본으로 발달해 왔다. 그러므로 서양 고전들을 읽기 위해서는 희랍과 로마의 작품들을 읽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그리스 로마 신화, 비극, 서정시 등이다. 이런 작품들을 읽게 되면 그 이후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전들을 이해하기가 한층 쉬워진다. 그런 사상가들도 어려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같은 고전들을 읽고 자랐고 그 바탕 위에 사유의 체계를 발전시켰다. 서양 문명은 이런 순서와 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 온다면 중세, 근대, 현대의 사상과 문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전(古典)의 한글 사전적 정의(다음 사전)는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는 ‘어떤 분야의 초창기(草創期)에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이룩했다고 평가받는 저작 또는 창작물’이란 의미를 갖는다. 왠지 좋기는 하지만 오래된 유물의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고전의 영어식 표현은 클래식(classic)으로 ‘일류의’, ‘최고 수준의’라는 뜻으로 앞의 한글의 정의와 약간 차이가 있다.
나아가 클래식의 라틴어는 클라시쿠스(claasicus)이다. 클라시스(classis)는 무리나 계급을 뜻하고 쿠스(cus)는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접미사이다. 그리고 그 원래의 뜻은 그 전쟁을 앞두고 함대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클라시쿠스 계급의 사람은 왕족 혹은 높은 지위에 있는 귀족을 지칭하는 단어였던 것 같다. 즉 국가의 운명이 달린 전쟁에 자신의 재력을 내놓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전쟁에 참전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리더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반대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국가에 자식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계급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고 한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했던 ‘이태원 클라스’의 클라스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것에 대한 자부심,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차원이 다른 클라스, 곧 클래식이다.
최근 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두 번째 정독 중이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난 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사시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을 공부하고 그 계통을 차근히 정리해 나갔다. 이렇게 어느 정도의 공부 후 다시 읽게 된 일리아스는 정말 차원이 다른 책이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입체적으로 살아났고,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이해하는 눈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와 폭이 전보다 넓어졌다. 그렇다 일리아스는 정말 클라스가 다른 작품이었다.
현대사회는 이해하기 쉽고 트렌디한 정보들도 난무하다. 고전 말고도 읽고 싶은 것이 많은데 굳이 고전이냐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 고대인들이 이상향으로 여겼던 아레테(Arete), 즉 탁월함이란 단어에 주목해 보고 싶다. 한번밖에 없는 못 사는 인생에서 무엇이든 한 번만이라도 그 탁월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고전들을 읽는 동안 고전 속의 개념과 이야기가 현대를 사는 우리의 고민과 큰 차이가 없다는 놀라운 사실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