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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02. 2024

사연도 많은 서동시집 by 전영애

Almost from(Fast von) 전영애 선생님

글을 읽기 전에:

위의 모든 내용은 전영애 선생님의 고유한 저작을 그대로 베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선생님께서 쓰신 <옮긴이의 후기>를 문학의 문외한인 내가 이런 방식으로 다시 쓰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인지 모른다. 행여나 선생님이 쓰신 내용이나 의도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생긴다면 이 글은 파기되어야 한다.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어 이렇게 시작하지만 꼭 찾아뵙고 나의 부끄러운 무지를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서동시집의 해설과 공부 방법을 꼭 여쭤볼 것이다.


이런 모든 염려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괴테와 마리아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 정서를 조금이라도 담아내고 기억할 수 있다면 앞으로 서동시집을 읽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흔들리는 감정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괴테의 이루지 못한 사랑 얘기에 눈물이 나는 건 또 뭐람.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글은 이렇게 된 것이다.




최근 전영애 선생님의 서동시집 강의를 듣고 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내가 마치 수세기를 거슬러 괴테 선생님을 뵙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쉴러와 미학에 관한 편지를 교환했고, 젊은 쇼펜하우어를 격려했으며, 나의 아픈 손가락 니체가 흠모했던 괴테 선생님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건성으로 읽었던 파우스트를 다시 꺼내서 정좌하고 읽게 된다. 이게 모두 선생님께서 비춰주신 ‘아름다운 삶의 빛’ 때문이다. 다음 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여백서원에 갈 예정인데 그날 선생님은 안 계신단다. 그래도 괜찮다. 이 핑계로 다음에 또 가면 된다. 기회만 되면 찾아뵐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큰 절 하고 싶다.


서동시집과 파우스트를 읽다보니 쇼펜하우어, 니체, 헤르만 헤세 등 내가 흠모하는 철학자와 문학가의 문장과 의미들이 문득문득 눈에 보인다. 이것이 내가 괴테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괴테 또한 그리스 서사시와 단테의 빛을 받은 문인이다. 철학과 문학은 이렇게 서로 공명하며  시대를 넘나들며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서동시집은 괴테가 1814년 14세기에 존재했다던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집의 방대한 번역본을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해 여름 괴테는 26살에 떠난 고향을 30여 년 만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56세의 나이에 프랑크프루트로 돌아가는 그 순례의 여정에 괴테는 동향 사람이며 자신의 열렬한 독자 은행가 빌레머 시 댁에 묵게 된다. 그의 65세 생일 축하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다음 해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


에로스가 화살을 겨냥한 것일까? 빌레머 씨의 집에는 딸의 친구이면서 교육도 함께 받던 양녀 마리아네가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유랑극단 여배우의 딸이었다.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였던 그녀를 큰돈을 지불하고 양녀를 삼은 것이었다. 나는 큰돈을 지불했다는 데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사실로 드러난다. 다음 해 괴테가 프랑크푸르트를 다시 찾았을 때 빌레머 씨의 양녀는 그의 아내가 되어 있었단다.


출처: 위쪽 괴테의 쪽지, 아랫쪽: 마리아네의 쪽지, 서동시집, 괴테(전영애 역), 길


마리아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괴테가 읽던 두꺼운 하피스 시집을 읽고 또 읽다 급기야는 그 시집의 페이지와 행들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경지에 까지 이른다. 위에 있는 필사를 보면 괴테만큼 마리아네도 하피스

시집에 진심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서로  시집의 장과 행을 적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괴테와 마리아네 사이에 오간 암호편지인 것이다. 너무 낭만적이다. 서로 같은 시집을 읽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남녀가 장과 행만 표시해 서로에게 보냈다는 것은 너무 환상적이다. 무슨 첩보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일들을 서동시집에서 만나게   누가 알기나 했겠는가?


앞에서 얘기했듯 그녀는 이후 빌레머 씨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괴테와 마리아네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나이 차이가 많이나기도 했다. 그러나 빌레머씨는 괴테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너무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테와 마리아네는 함께 독서를 하며 친분을 쌓아 나갔다. 마리아네가 괴테의 감성을 폭발시켰다. 그때 쓰인 시는 [줄라이카 서]로 묶이게 되었다고 한다. 줄라이카는 마리아네의 페르소나였다. 서동시집 안에는 마리아네의 시도 몇 편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 시는 동풍시, 서풍시인데 시를 슈베르트가 곡으로 만들기도 했단다.


나는 이 둘이 서로 감성적, 시적으로 교류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괴테가 그의 집을 떠날 때 두 내외가 하이델베르크까지 전송을 나온 이후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했고 편지 왕래도 없었다고 하셨지만 부록에 첨부된 편지들은 서로가 사랑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리아네는 괴테를, 괴테는 마리아네는 정말 사랑하지 않았을까? 괴테는 신사도의 뒤에 숨은 채 마리아네를 그저 마음으로 염모 하기만 했을까?


출처: 서동시집, 괴테(전영애 역), 길


치자와 월계수가 함께 있네

어쩌면 서로 나뉜 듯 보여도

둘은, 축복받은 시간들을 기억하며

희망에 차 또다시 하나 되려 하네


<마리아네의 편지, 1823년 10월 15일>

(1815년 10월 15일을 생각하며)


그냥 순수한 문학적 사랑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사랑을 뾰족이 세운 성의 꼭대기에 가둬놓고 혼자만 향유하려는 성주의 헛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마리아네가 괴테에게 쓴 편지들은 긴 세월 고이 간직했다가 임종을 1년 앞둔 시기에 정성스레 묶어서 보내졌다고 한다. 그 편지에 덧붙여진 쪽지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출처: 서동시집, 괴테(전영애 역), 길


사랑스럽던 이의 눈앞으로

이걸 썼던 솔길에게로

언젠가 뜨거운 갈망으로

기다리고 받던 것

그것들이 솟구쳤던 가슴에로

이 종이들은 돌아가거라

늘 사랑에 가득 차 저기 있던 것

가장 아름다웠던 증인들

(1831, 마리아네)


괴테도 빌레머 씨도 죽고, 그 주변 사람들도 모두 죽고 난 후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는 마리아네가 그림 형제의 형(빌헬름 그림)에게 자신이 줄라이카라고 밝혀서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괴테와 마리아네가 사랑의 불꽃을 애써 꺼트렸을 빌레머 씨의 집은 아직도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가에 있다고 한다. 마리아네가 자신의 정부와 함께 괴테를 환송했던 하이델케르크의 성곽 난간에는 마리아네가 괴테의 시구를 조합해 쓴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글들과 선물들은 독일의 여러 괴테 박물관에 나누어 소장되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프랑크푸루크에 갔을 때 기차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괴테 박물관 입구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던 것 같다. 그 무식의 소치로 나는 괴테 박물관 문 앞에서 근처에 있던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아~ 이 얼마나 웃기는 희극이고 슬픈 비극이란 말인가?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괴테박물관을 관람하지 않은 여행객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부끄럽지만 진짜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이 불경하고 천박한 욕망으로 인해 오늘 나는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출처: 서동시집, 괴테(전영애 역), 길

마리아네가 괴테를 위해 만들어 ‘줄라이카’라고 페르시아어로 수놓은 슬리퍼는 스위스의 구두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언젠가 이 모든 공간들을 방문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이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며 이루지 못한 남녀의 사랑을 함께 아파할지도 모르겠다.


전영애 선생님 전상서: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영상으로나마 자주 뵐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꼭 정신 차리고 죽도록 공부해서
선생님의 성실한 문하생이 되겠습니다.

마리아네가 그랬듯
서동시집의 모든 장과 절을
넘나들 수 있도록 읽고 또 읽겠습니다.

오래도록 의연하게
땅에 발을 디디시며 건강하세요.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알려두기:

이 글은 전영애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 서동시집에 실린 옮긴이의 후기를 읽고 작가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덧붙여 쓴 글입니다. 이전에 제가 알고 있던 것은 이무 것도 없으므로 이 글은 전영애 선생님의 빛에 비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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