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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14. 2024

봄이 오면 생각나는 추억들

봄예술제 1부: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


1.   프롤로그: 창덕궁 근처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한옥 카페, 프릳츠>


아침에 창덕궁 옆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달달한 장미향이 나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다. 이곳은 석탑이 있는 고즈넉한 한옥 카페이다. 카페에 석탑이라니. 서울 시내에 한옥으로 지어진 카페라니. 커피, 석탑, 한옥…..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과 평일 아침에 글을 쓰고 있노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저 뒤 벽을 가득 덮고 있는 아이비의 앙상한 나뭇가지는 잿빛으로 말라죽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 물이 차오르고 있다. 그 위로 파란을 배경으로 구름이 하염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향해 달려가는 양 떼 같다. 까마득히 멀리 있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빠른 구름을 보며 갑자기 떠오르는 몇 가지 추억이 있다.


2.   주의요망: 군대에서 축구, 농구, 배구한 얘기


말단 소위일 때 모시던 상관이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주 불려 가 혼이 났었다. 가끔 욕도 하고 얼차려도 줬다. 그런데 당시에도 장교들 사이에 그런 부조리한 방식으로 부하나 후임을 다루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는 군생활에 목숨을 건 장기 자원이기에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내가 독하게 마음만 먹었다면 그는 그때 옷벗어야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한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봄날 중대장은  대대 체육대회가 있으니 사활을 걸고 우승해야 된다고 중대 간부들을 다그쳤다.


당시 체육대회는 각 중대별 대항전으로 개최되었다. 주요 종목은 축구, 농구, 배구였다. 경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모든 종목에 중대장, 소대장, 부소대장이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에 재능 있는 자원들을 선별해 출전하는 방식은 선수 구성이 비교적 단순하다. 그냥 잘하는 사람을 뽑아 연습하고 출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간부들이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는 이런 조건으로 인해 간부들의 역량과 리더십이 매우 중요해졌다.


체육대회 우승을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구기 종목 3개 중 2개만 이기면 확률적으로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농구, 배구에 집중했다. 축구? 축구는 늘 축구화 신고 다니는 행보관에게 맡기면 된다. 만약 축구에 지더라도 농구, 배구에서 이기면 된다.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에 가득 찼다. 왜냐하면 나는 농구와 배구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좌: 마지막 승부, 우: 슬램덩크)


내가 중 고교를 다니던 때는  <마지막 승부>, <슬램덩크>로 인해 농구의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농구부에 남학생 절반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농구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 당시 나는 틈만 나면 농구장에서 놀았다. M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트레이드 마크인 신던 에어 조던을 신고 마치 농구 선수라고 될 것처럼 농구장의 귀신으로 살았다.


배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고교 시절 봄예술제(체육대회) 때 익힌 배구의 기본기가 몸에 배어 있었다. 동기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 학년에서 몇 안 되는 리베로였다.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 이 3가지가 제대로 되는 사람은 한 학년에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스파이크는 배구의 꽃이다. 타이밍에 맞춰 멋지게 스파이크를 쳐내기 위해 밤늦도록 배구장에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체육대회의 날이 밝았다. 중대장은 체육대회 당일 아침까지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번에 우승 못하면 다들 옷 벗을 각오 하라고. 나는 어차피 단기로 복무할 자원이었기에 그런 말은 한 귀로 흘리고 다른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나는 이번 체육대회에 우승하고 싶은 야망에 불타 올랐다. 그냥 이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농구, 배구는 진심으로 이기고 싶었다.


농구, 배구에 집중하자.
나머지는 어떻게 되라지.
농구, 배구만 잡으면 된다.
우승이다. 우승!


대회의 막이 올랐다. 오전에는 축구와 농구가, 오후에는 배구가 예정되어 있었다. 중대 간부 중 선임 소대장과 나는 농구에, 부사관들은 축구에 각각 출전했다. 드디어 대대 선임 중대장이 이끄는 1중대와 시합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기싸움이 팽팽했다. 서로 긴장을 했는지 외곽 슛은 거의 득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소대 에이스 찬영이가 2점 슛을 성공했다. 찬영이는 3 on 3 nike 전국대회 청소년부에서 2위까지 해 본 적 있는 농구 신동이었다. 대대에서도 기본기와 기술이 좋기로 유명한 친구다. 그리고 우리 중대는 가공할 만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우리 중대 선임 소대장인 배중위는 키가 190cm가 넘는 장신에 중학교 때까지 농구부를 경험한 말 그대로 선출이었다. 외곽에서 찬영이가 흔들어주고 골 밑에서 선임 소대장이 가볍게 넣어주면서 초반부터 승부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경기 초반 트리플 스코어에 가깝게 우리가 경기를 압도했다. 내가 농구장에 있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3.   이제 배구만 이기면 된다.


나는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배구 경기에 선발된 인원들을 데리고 바로 배구장으로 향했다. 배구는 내가 직접 선수를 뽑아서 한 주 전부터 리시브와 토스를 연습시켰다. 공격은 좌우 윙을 맡아줄 키 크고 운동 신경이 좋은 인원 3명을 뽑아서 별도로 특훈을 했다. 다른 중대는 축구나 농구에 열을 올리느라 배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오전에 경기도 없으니 다른 경기 응원하느라 정신없었다.


나는 이틈을 노려 선수들과 맹훈련에 들어갔다. 철저하게 기본기에 집중했다. 배구는 공격보다 수비가 중요하다. 편안하고 정확하게 받아내야지만 공격다운 공격을 준비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한 주 내내 선발된 인원을 데리고 리시브만 훈련시켰다. 하루 한 시간씩 언더 토스, 오버 토스만 연습했다. 정말 기본기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정신력이 중요하다. 나는 패배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왔다. 오늘은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공격수는 딱 3명 뽑았다. 우측 2명, 좌측 1명. 마침 왼손잡이인 인원은 학창 시절 배구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왼손잡이인 데다 배구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우리에게 유리했다. 그리고 오른손잡이 2명은 배구를 해본 경험은 없지만 순발력과 점프력이 있는 친구들을 뽑았다. 딱 7일 매일 스파이크를 집중적으로 연습시켰다. 세터는 내가 맡았다. 뒤에서 리시브만 안정적으로 해 주면 연습했던 포인트로 공을 올려주기만 하면 됐다.


예상했던 대로 오전에 우리 중대가 농구에 우승했다. 아쉽게도 축구는 준결승에서 1중대에게 석패했다. 오전 경기 결과는 1중대와 우리 중대가 각각 한 경기씩 나눠 가졌으니 무승부다. 이제 배구만 남았다. 점심 직후 대대 전 병력이 배구장에 집합했다. 배구는 분명 비인기 종목이지만 오전에는 축구와 농구가 분산 개최되었지만 오후에는 농구와 줄다리기만 남았으므로 사실상 배구가 오후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예선전을 3중대와 맞붙게 되었다. 전운이 감돌았다. 멀리서 보니 3중대 인원들의 키가 상당하다. 무슨 프로 배구 선수를 보기라도 하듯 모두들 키가 컸다. 솔직히 녀석들의 키를 보니 좀 긴장되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한 주 동안 내가 직접 기본기를 잘 가르쳤고 배구에 참여한 병사들도 감각이 좋아 금방 기술과 전술을 습득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상대방은 배구에 대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서브, 리시브가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상대방이 서브를 넣으면 서로 콜을 불렀고 중간에 있는 내가 받기 좋은 자리로 정확해 연결했다. 나는 약속했던 대로 배구 경험이 있는 좌측 공격수 우진이 쪽으로 공의 70%를 올려줬다. 우진이가 스파이크를 치면 3중대 녀석들은 손 써볼 방법도 없이 우리의 득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배구는 변수가 많은 경기다. 한 사람의 실수는 곧 한 점과 같다. 나는 분위기를 다 잡았다. 파이팅을 외치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무섭게 팀을 몰아쳐 갔다. 경기에 큰 변수는 없었다. 3중대와의 경기의 세트 스코어는 3:0 완벽한 우리의 승리였다.     


이제 1중대와 본부 중대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면 됐다. 예상을 깨고 본부중대가 결승에 올라왔다. 경기를 살펴보니 한국체대를 졸업한 본부 중대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1중대가 탈락했으니 본부 중대를 이기면 우리가 우승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묘책이 필요했다. 나는 즉시 선수들을 모았다. 그리고 전술 지시를 했다. 결승전의 주포는 우진이가 아니라. 우측에 있는 목포 출신 윤재로 정했다. 아무래도 오전 경기를 참관한 본부 중대장이 우진을 직접 마크할 것 같았기에 나는 전략을 바꿨다. 윤재는 키가 185cm 넘는 우리 소대 선임 분대장이다. 내가 평소에 신임하고 있고 그도 나를 잘 따랐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점프력이 좋았다. 다만, 이번에 배구를 처음 해보는 거라 우진이보다 기술은 좀 부족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구 선수 신진식! 이제 다 예날 얘기다 ㅋ, 출처 연합뉴스>


결승전이 시작됐다. 확실히 본부 중대가 실력이 좋았다. 오전에 경기를 했던 3중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본부 중대장이 공격을 주도했고 득점 성공률도 높았다. 1세트를 팽팽하게 진행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본부 중대장이 좌측에 있는 우진이 앞에서 브로킹을 했다. 그래서 초반에 토스를 오른쪽에 있는 윤재에게 집중시켰다. 다행히 윤재가 스파이크 몇 개를 성공시켰다. 그런데 윤재가 몇 개의 공격 기회를 날렸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스파이크 없이 내가 직접 상대방의 빈 곳에 공을 몇 개 때려 넣었다. 본부 중대장이 흔들렸다. 처음에 왼쪽을 집중 마크하다가 본인이 세터로 자리를 변경한 것이었다. 잘됐다. 나는 이 기회를 살려 이제 왼쪽에 있는 우진이에게 공격 기회를 집중했다. 우진이의 스파이크는 날카로웠다. 이런 것을 두고 ‘일격필살’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팀은 기본기도 좋을 뿐 아니라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착착 수행해 주었다. 경기 결과는 3:0! 그야말로 우리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그렇다. 농구, 배구를 우승한 우리 중대는 그해 체육대회에서 우승했다.


4.   승자의 여유는 말년까지 이어지고


체육대회는 어느 단체를 막론하고 뜨겁다. 싸우면 이겨야 하고, 승부는 냉정하다. 배구 경기에서 우리의 우승이 결정된 후 우리 중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중대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중대장을 비롯한 출전 선수 모두를 둘러업고 연병장을 뛰었다. 행정보급관은 적들 보란 듯이 연병장 한가운데 돼지 수육, 맥주, 막걸리로 멋들어진 잔칫상을 준비해 놓았다. 오늘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중대의 날이었다. 그날 대대장도 우리 중대장의 손을 잡으며 중대 관리 잘했다고 격려하며 두둑한 금일봉도 주고 가셨다. 중대장은 마치 자기가 소령 진급이라도 한처럼 가슴을 피고 턱을 치켜올렸다.


대대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중대장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 ‘1 소대장 너 이 새끼’에서 ‘우리 1 소대장’으로. 그 이후로 중대장에게 불려 가서 혼나거나 얼차려 받아본 적이 없다. 첫 번째 중대장이 전출 가고 두 번째 중대장이 부임했을  때는 내가 말년 중위였고, 대대 선임 소대장이었기에 내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의존했던 것 같다. 군생활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말년 중위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 3년차 중위는 화석 같은 존재다. 잘못하면 말년 병장보다 더 망나니가 되어 날뛸 수 있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지는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군 시절 우승했던 체육대회가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군 시절 체육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교 시절 봄 예술제에서 다양한 종목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고교 시절 봄 예술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니 군 시절 운동 잘했다는 자랑만 늘어놓았다. 괜히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이 글에 이어서 조금은 부끄러운 나의 고교 시절의 추억을 얘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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