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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r 31. 2024

나에게 보내는 위로

뒤쳐진 새

뒤쳐진 새(라이너 쿤체)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쳐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쳐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탠다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 2주 글도 쓰지 못하고 지냈다. 여러 심란함에 모든 일을 다 내려놓기로 했다. 그야말로 '뒤쳐진 새' 신세가 된 샘이다.


다행히도 40대 후반에 마음으로 모시는 스승님이 생겼다. 큰 마음먹고 편지 몇 장 쓰고 고이 접어 직접 인사드리러 나섰다. 그분을 만나자 마자 크게 인사하고  지난 삶의 여정을 고해하듯 말씀드렸다. 바쁘신 중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허락해 주셨다. 다시 태어난다면 죽도록 공부해서 선생님의 청년 학도가 되고 싶다고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시며 두 눈에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 태어날 필요 없어요.
자기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에요. 공부는 그냥 자기가 하는 거예요. 하면 됩니다. 할 수 있구요.


내가 그리스 고전과 단테, 괴테, 러시아 문인들을 작품을 열심히 읽게 된 것이 모두 니체 때문임을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내가 니체의 책들은 철학자가 아니라 문인들이 번역해야 하는 게 옳다고 말씀드렸다. 단테도 괴테도 운문을 산문처럼 번역한 책들이 다수이기에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몇 년에 걸쳐 완역하셨다고 하셨다. 니체의 주저에 해당하는 책을 번역하셨다는 것이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내게 시간이 되면 꼭 감수를 해 달라고 하셨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스승님의 귀한 번역을 읽어내는 것에 급급할 내가 감수라니...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스승님의 번역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드리고 싶다. 피로 쓴 글이니 피와 땀으로 읽어드려야 한다. 철학서나 사상서가 아닌 시와 문학으로서의 번역은 어떤 것일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작년에 짜투를 번역하시기 위해 스위스의 실스 마리아를 몇 번이나 다녀오셨다고 한다. 스승님께 감히 말씀드렸다. 다음에 가시는 일정이 있으면 짐꾼으로 나를 꼭 불러 달라고. 니체가 영원회귀의 영감을 얻고 불과 몇 년 안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미래 철학의 서곡이라 칭송 받은 많은 의미 있는 책들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곳의 높이와 공기와 경치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오고 싶었다.


스승님의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연로하신 분들을 만나는 기회를 놓치거나 미루면 안 됩니다.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뵙고 그 지혜를 조금이나마 더 배우고 싶고, 또 그런 어른들이 세상에 계시다는 게 그저 너무 고마워서 저절로 발길이 옮겨집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전영애, 문학동네>



삶에서 크게 뒤쳐진 나는, 틈만 나면 스승님을 찾아뵐 것이다. 그 지혜와 깊이와 넓이를 그리고 문을 열고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창조의 힘을 배우고 싶다.


책을 들여다보니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신다. 나는 20년 전에 커피 산지를 누빌 꿈을 꾸고 꿈처럼 살아 본 적이 있다. 10년 전에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회사의 경영자였다. 40대가 넘어서 되어서는 서양과 동양의 인문학을 아우르는 가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제 그 중간쯤 온 것 같다. 스승님을 봬도 정말 열심히 하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다.


스승님은 스승으로 모신 라이너 쿤체 시인을 쉰다섯 살에 처음 만났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분께 자주  힘은 얻으며 학문에 정진해 나가셨다. 위의 시도 라이너 쿤체께서 스승님을 로하며 보내주신 시이다. 나는 스승님에 비하면  많은 기회가 남았다고   있다.


나도 이분들처럼 꿈꾸고 사랑하며 해처럼 맑게 살 것이다. 비록 방황하고 깨지고 자빠지더라도 10년 후를 향해가는 내 행보는 반듯할 것이고, 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남들과 발맞추지 못한 약하고 느린 내게 힘을 보태주실 사려 깊은 스승님들이 계시기에 꼭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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