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등학교 이야기: 작지만 위대한 학교
우연히 웹서핑 중에 본인의 학장시절 은사님(전 거창고 이사장)이셨던 故 원경선 옹의 소식을 접했다. 내 삶의 큰 기준이 되어주신 스승님의 자취를 이렇게나마 확인할 수 있음에 감격했다. 그리고 나도 곧 내게 주신 가르침의 흐릿한 기억들을 모아 위대한 스승의 삶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이하내용은 <로하스>의 기사를 그대로 사용하였음을 밝혀둔다.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차용하는 이유는 내가 거의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잘 설명했으므로 내게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창고 기숙사:(구)풀무관>
풀무원의 사명으로 사용한 풀무는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또는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기구인 풀무에서 유래했다. 거창고는 기숙사를 운영한다. 한국전 직후 인문계 교육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직업교육관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풀무질 해서 농기구, 칼, 화살 같은 도구를 만들었듯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인간을 양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풀무관은 기숙사가 되어 학생들의 전인적 생활교육의 현장으로서 사회를 위해 '빛과 소금의 삶'을 지향하라는 원경선 이사장의 풀무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아무쪼록 이 글을 통해 그의 생애와 숭고한 정신이 풀무가 되어 , 많은 이들의 삶을 정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년 올해는 풀무원의 창립자인 故 원경선 원장님의 추모 10주기가 되는 해다. 일찍부터 사람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이웃사랑, 생명존중을 말하고 실천했던 아름다운 농부, 유기농의 아버지, 그리고 풀무원의 원장님.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원장님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는 풀무원이 걸어온 길, 또 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가슴속에 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1953
풀무원을 세우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군을 상대로 토목청부업을 운영했던 젊은 시절.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부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옳은 삶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책을 느꼈다. 전쟁은 굶주리고 헐벗은 수많은 고아와 넝마주의들을 낳았고, 원경선 원장님은 1만평의 땅을 농토로 개간해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 ‘풀무원 농장’을 만들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사람답게 만드는 풀무질, 풀무원의 시작이었다.
<출처: 로하스>
1976
유기농을 시작하다
“이웃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남의 건강을 해치는 농약을 칠 수 있느냐.”
1970년대는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시절, 더 많은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 온 농토가 농약과 화학비료로 뒤덮이던 때였다.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원경선 원장님은 양주로 농장과 공동체를 옮긴 뒤 풀무원 농장을 법인으로 만들어 ‘한삶회’를 설립하고,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한 뒤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을 시작했다.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유기농의 길은 3년 만에 결실을 이루었다.
<출처: 로하스>
1988
세계 기아문제 해결에 동참하다
“전 세계 인류의 4분의 1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2초에 한 명이 굶어 죽고 있다.”
원경선 원장님이 강조했던 이웃사랑과 생명 존중의 정신에는 국경이 없었다. 1988년 일본 에서 열린 국제기아대책기구 행사에 참석한 원장님은 전 세계적으로 기아들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알게 되었고, 국내로 돌아와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에 구호금과 양식을 전달하고, 아프리카에서 포도밭 캠페인, 러브케냐 캠페인 등을 펼쳤고, 198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출처: 로하스>
2001
풀무원의 정신을 가르치다
“풀무원 사업은 바른먹거리 사업이니까 생명 사업이다.”
풀무원이 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원경선 원장님은 임직원들에게 풀무원의 브랜드 정신을 교육시키는 중요한 ‘선생’이었다. 실천가이자 뛰어난 계몽가였던 원장님은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풀무원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이어갔다. 특히 풀무원로하스의 로하스아미들은 로하스아미들은 열렬히 원장님을 존경하고 따랐다. 원장님의 ‘이웃사랑 생명존중’ 강의가 끝나고 나면 자발적으로 모금한 이웃사랑기금을 전달하곤 했다.
2004
평화를 전도하다
“일용할 양식만 남기고 다 나누면 군대도 전쟁도 없다.”
2004년의 이른 봄. 28년을 몸 담아온 양주의 풀무원 농장을 떠나 원경선 원장님 내외는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로 거처를 옮겼다. 풀무원이 원장님이 만년을 보낼 장소를 준비하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동체 식구들을 위한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원장님은 괴산에 자리잡은 공동체에 평화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평생 청렴하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설파해온 원장님 만년의 작업은 평화를 전도하는 데 바쳐졌다.
<출처: 로하스>
2013
영면에 들다
“회사가 망할지언정 소비자를 속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원칙을 어길 수 없다.”
한평생 공동체를 위한 존중과 사랑, 사람과 자연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유기농을 실천하고 널리 알리며 살아온 원경선 원장님은 2013년 1월, 10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원장님이 남기고 간 단출한 유품은 청빈했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원장님의 진정한 유산은 그가 실천해온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의 정신일것이다. 풀무원은 원장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을 실천하며 사람과 자연, 지구가 건강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원경선 이사장 약력]
1914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935 황해도 수안공립보통학교 졸업
1955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농장 및 공동체 설립
1960 거창고등학교 이사장 취임
1976 풀무원농장을 경기도 양주로 옮기고 한국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함
1976 한국 최초의 유기농단체 '정농회' 창립
1990 한국기아대책기구 부회장 취임
1992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 취임
1995 유엔 '글로벌 500'상 수상
1997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98 '인간상록수'와 '인촌상' 수상
2002 영농조합법인 풀무원농장 원장
출처: 풀무원 로하스 생활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