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가족의 서울 나들이
선배에게
정말 오래 만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다정한 듯하면서도 꽤 무심한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이렇게 편지 쓰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사실 선배와는 학교 다닐 때 모르고 지내던 사이였잖아. 작년 겨울 어느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연락처를 안주길래 많이 내성적인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었지. 그래도 ‘내가 SNS나 연락처라도 알려 주세요’라고 졸랐던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인연을 놓칠뻔했어. 그게 아니었더라도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음악 선생님과의 30년 인연으로 나는 다시 선배를 만나게 되었지. 그때 너무 신기했어. 동기 승훈이랑 만나게 된 것도. 이거 다 누가 계획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야.
근데 어쩌나? 나는 그런 필연적 인연에 연연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지금도 내 창가 하늘 위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이 바람 따라 흘러가고, 저 뒷산 위로는 별들이 부싯돌처럼 세차게 빛을 밝히 듯 세계는 언제나 깊고, 차갑고, 냉랭하기만 하잖아. 세계는 나에게 냉정하고 냉혹하게 다가왔어. 연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무자비하고 험악하기만 했지. 그저 소음과 광기로 가득 찬 세계 속에 나는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나의 고난과 분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몹시 궁금했었어. 한때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고, 지금은 수많은 고전들을 읽으며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글쎄 아무리 답을 찾으려 노력해도 세계는 아무런 실마리도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던 것 같아. 설령 세상에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고 해도 나같이 어리석은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싶어.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의미라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뭐가 다를까?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계획에서 어머니, 조카까지 멤버가 추가되면서 선배가 스트레스받던 게 기억나. 나는 사실 한 명이든, 네 명이든 상관없었는데. 선배는 늘어나는 가족들 때문에 내게 미안해했던 것 같아.
선배! 나는 삶을 희망적으로 보지 않지만, 그러하기에 후회 없이 삶을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희망이 보 지지 않는다고 절망적으로 살기에는 엎치락뒤치락 살아온 내 삶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지잖아. 그래서 나는 추상적 관념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어. 그저 구체적인 삶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살아가며 몰두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의심의 여지없이 내 눈앞에 펼쳐진 일상을 그저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면 충분해. 선배가 아프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 온다고 말했을 때 내가 흔쾌히 나의 하루를 내어드리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야. 아프신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오는 선배의 하루, 그 하루를 불편하지 않게 동행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병원에서 나오시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어른거려
“오늘은 이승만, 윤보선이도 안 부럽다 아이가. 이래 좋은 차에, 이래 좋은 분이 우리를 청와대로 데려다주시는데 내가 뭐가 부러운 게 있겠노? 내 주변에 내보다 돈 많은 사람도 많지만 그거 다 안 부럽다 아이가”
그날의 강변북로는 따뜻한 햇살로 가득했지. 그래서 내가 갑자기 선루프를 열었잖아. 우리 머리 위에 내래 쬐는 태양이 우리를 가득 비쳐주는 것 같았어. 마치 햇빛이 우리 삶에 은총이라도 내려주는 듯 두 노부부는 행복했고, 나는 즐거워 내가 부른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노래를 들려드렸지. 기억나? 막걸리 한잔에 취해 마치 돈키호테라도 된양 부른 나의 노래를 듣고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었잖아.
그 순간만큼 아버지의 아픈 몸도 엄마와 선배의 시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거야. 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부가 끝이 없음을 확신하는 귀족처럼 이 세계가 주는 모든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빨아들이셨는지 모르지. 아버지는 그 순간에 충만했고, 지금 여기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청와대 가는 길에 을지로를 지나며 50년도 더 되었을 군생활을 깨알 같이 기억해 내셨지. 기억나요?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다는 얘기, 대구 동촌 비행장, 1호차 중대장 운전병, 당시 바나나 한송이가 2만 원도 넘었다는 믿을 수 없는 말씀까지.
청와대 관람을 하시며 좋아서 어깨를 들썩들썩하시던 아버지가 잊히지가 않아. 속으로 ‘어쩜 저리도 좋아하실까?’라 생각하며 내 입 고리도 살짝 올라갔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었어. 잠시 감정이 격해지더라. ‘지금 살아계신다면 비슷한 연배이실 텐데. 살아만 계셨다면 내 전 재산이라도 팔아서 호강시켜 드렸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 문득 담장 사이로 내려 쬐는 태양이 야속했어. 오늘따라 화창하게 비추는 햇살이 슬프도록 따스할 건 또 뭐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니는 새들이며 뭉게뭉게 뭉쳐 다니는 하늘의 구름들이 더 아름답게 보였어.
나는 오랫동안 믿어왔어. 이 세계는 절대자가 통치하는 듯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논리에 기만당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가족을 오랫동안 공부해 왔어. 바람직한 가족 관계,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법, 불행한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하물며 내 졸업논문 제목은 '부모의 양육태도과 자녀의 대인관계 지능과의 상관관계'일 정도라니까.
그러나 오랜 공부 끝에 내린 결론은 ‘가족은 국가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강제한 제도’라는 거야. 가족은 바람직해야 하는 것도, 행복하거나 불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야. 이 세계가 그렇듯 어떤 궁극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지. 우리는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통해 어쩌면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는 아직도 이 세계에는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존재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다 생각해. 가족이란 개념도 야생의 세계 속에 있음 직한 그런 가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해 왔어. 하지만 나는 이번에 내가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 의미 없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조차 가족이라는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본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절망적이지만 나는 절망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아야겠다고.
나는 이제 나의 영원한 불행에 맞서 싸우는 대열에 서 있어. 내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내 삶의 불행했던 과거, 나는 불행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아직도 불행한 삶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다른 행복을 창조해야 하겠지? 나는 여전히 이 세계에 궁극적인 신이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기에 성실한 삶과 그것을 지지할 정의를 선택한 거야. 그리고 나는 그런 세상에 의미부여를 해 줘야 할 마지막 보루가 사람이라 생각했어. 오직 사람만이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거잖아. 오직 우리만이 끈질기게 고집을 피우며 억척같이 인생을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잖아. 나는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는 선배의 진심에서, 네 남매를 키워내려 그릇이라도 씻으러 가시겠다는 어머니의 고백에서, 밭일하시느라 마디마디가 다 뒤틀리고 아픈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서 희망을 발견했어. 이 세상은 적어도 부모라는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운명 자체에 맞서 그 진리를 증명해 오신 거잖아. 나는 아직까지는 이것 말고 다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내 삶 속에서 가족을 구해내는 일을 먼저 시작할 거야.
알다시피 나는 결혼 이후에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년 가장이야.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그런데 나는 늘 이것이 나의 진짜 삶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주제로 하는 연극 속의 주인공으로 연기하며 사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아. 늘 비극적 생을 경험한 나에게 해피엔딩이라는 설정이 어울리기는 한 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거지.
하지만 나는 그날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인생의 고통을 몰아내고 내 삶의 희망들을 발견했다는 생각을 했어. 그날 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뒷산의 별들을 바라보며 처음 그 무심한 하늘의 별들이 따뜻하게 느껴진 거야.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어. 아~ 내가 그동안 너무 차가운 사람이었구나. 고향에 오면 꼭 들르라는 어머님의 말씀에서 따뜻한 밥상의 온기를 느꼈던 거였을지도 몰라. 나는 오늘 선배 가족들의 따뜻한 일상을 통해 사실상 나도 형제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걸까? 다복한 선배의 가족들을 보며 나는 내가 줄곧 행복했으며 지금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비록 내가 행복한 가족의 해피엔딩을 꿈꿀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가족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선배! 말이 길었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봐요. 아버지, 어머니께 꼭 전해 줘요. 어머니가 해 주시는 따신 밥 먹고, 힘들게 가꿔놓으셨을 복숭아 밭도 둘러보러 갈게요. 복사꽃 피는 봄에 바람처럼 다녀가겠다고.
그럼 이만.
2024. 2. 2
대장 푸른 마을에서 후배가
빛과 그늘은 어디에나 있다
세상 안에도 있고
자기의 삶 안에도 있다
<위대한 캐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 제럴드, 민음사>
PS: 하늘 같은 선배에게 반말로 써서 미안해요. 편지라 맘 편하게 써봤어요. 용서해 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