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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수레 Sep 26. 2022

광화문과 테헤란로

당신은 어디로 출근하길 원하시나요?  

수입 L화장품 회사 사무실은 현재 광화문에 있다. 과거에는 논현역 근처에 있었다. 

임차계약이 종료되면서 좀 더 넓은 공간을 찾다가 2015년도 광화문에 신축한 D타워로 입주하였다.

새로운 사무실 후보지역과 빌딩이 여럿 물망에 올랐다. 최종 결정은 광화문 D타워였다. 신축 오피스 빌딩이니만큼 글로벌 회사를 유치하기 위해서 Rental Free 기간을 상당히 제공받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직원들은 새로 이전할 사무실이 강남이 좋은지 강북이 좋은지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이후 서울역 앞 서울 스퀘어 빌딩이 유력한 후보지로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빌딩은 대우빌딩 본사, 그리고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본사 빌딩이었는데 모두 파산했다. 풍수지리가 안 좋다고 하던데?'라는 등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서울 스퀘어 빌딩으로 이전하지 않았다. 광화문 새 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는 날. 실제 돼지머리 대신에 애교스럽게 붉은색 돼지 저금통을 준비했다. 돼지저금통과 함께 음식을 준비해서 건물神인지 地神인지에게 고사를 지낸 것을 보니 건물 풍수가 아주 조금(?)은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시 대표이사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으니 어디까지 내 추측일 뿐이다.  


광화문으로 이전하자, 강남이나 용인, 분당 지역에 사는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이 멀어졌다고 투덜댔다. 강을 건너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넓고 쾌적한 초현대식 신축 빌딩에 근무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높아졌다.  


광화문 근처에는 산책코스나 볼거리도 꽤 많다. 점심시간에는 서울에서 가장 큰 서점,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거나, 청계천 또는 조계사를 산책하기도 하였다. 4월 초파일 조계사의 화려한 연등을 보면 눈이 호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인사동 또는 삼청동 거리를 걷기도 하였으니 곳곳이 볼거리요 즐길 거리가 많았다. 경복궁을 지척에 두고 있고, 조선왕조 500백 년 동안 중심 거리였으니 곳곳이 문화 유적지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옛 조선의 관공서 터였다는 표지석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무공간으로서는 참기 힘든 단점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진행되는 대규모 시위로 인한 소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 노동단체, 농민단체 시위 등 각종 시위와 집회로 광화문은 항상 시끄러웠다.

교통이 통제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4대 문 안, 도심, Downtown 광화문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역사를 호흡하는 것 같고 기분 좋았지만 막상 근무해보니 피곤한 일이 많았다. 소음공해가 이처럼 참기 힘든 것인지를 새삼 절감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5년 정도 살았다. 한강 뷰가 있는 아파트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강변도로의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 엄두를 못 낸다. 

광화문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지역이지만 시끄러운 단점이 있다. 


현재는 강남 테헤란로에서 근무하고 있다. 

광화문만큼 문화유산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볼거리 즐길 거리는 못지않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있고 스타필드 몰이 있다. 몰에는 반디 앤 루니스 대형서점이 있어서 책 구경을 할 수 있다. 음식점도 수없이 다양하다. 

가까이에 봉은사가 있다. 봉은사 부지는 꽤 넓다. 봉은사를 한 바퀴 도는 ‘명상의 길’은 점심시간 산책하기에 딱 적당한 코스이다. 


 L백화점 상품본부가 2022년 5월 소공동 사옥에서 테헤란로 WEWORK에 입주하였다. 경쟁사 대비 고급화, 럭셔리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L백화점의 신임 대표이사가 처음 했던 일은 외부 전문가를 임원으로 영입한 것, 그리고 두 번째가 상품본부 약 230명을 강남 테헤란로 이동시킨 것이다. 

트렌드 세터들이 있는 곳, 고급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선언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실천한 건가.  


그러고 보니, 메이저 백화점인 H백화점도 테헤란로에 있고 S백화점 본사도 명동에서 서초구로 이전했다. 

L백화점 상품본부의 강남 이동은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이고 과감한 결정이라고 판단한다. 

고객이 있고 유행이 있는 곳에 백화점 바이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 발상이다. 그런데 왜 더 일찍옮기지 않았을까. 수도를 옮기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겠지만 사무실도 한강을 넘어서 이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光化門은 임금의 큰 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다 

덕을 비추는 지는 모르겠으나 광화문에는 현재 法을 다루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로펌인 김앤장 본사와 법무법인 태평양도 광화문 지역에 있다. 

반면 백화점 3사 본사 및 패션회사 등은 테헤란로를 비롯한 강남에 위치한다. 


이유와 목적이 있는 곳으로 사람도 회사도 모여든다


조선시대에는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라는 말이 있었다. 

2020년대에는 'Law Firm은 광화문으로  Fashion회사는 테헤란로에"라고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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