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전공자인 나는?
대학교 모의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중국어과와 경기는 '청일전'이라 불렀다.
중일전이라 하지 않고 왜 청일전이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어감상 더 좋았으려니 생각할 뿐이다.
어찌 되었든 중국어과의 모든 경기는 라이벌전이다.
청일전이라 하니 중국어과 학생은 중국(청나라)을 대표하고 우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일본인에 빙의해서 청나라와의 전쟁은 이겨야 했다.
외국어대 일본어과 90학번인 '라떼 시절'은 그랬다.
지금도 청일전이 벌어지고 있으려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롯데백화점이다. 많이 알려진 대로 롯데는 半은 일본계 회사다. 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자수성가해서 번 돈으로 모국인 한국에 투자했다.
지금의 한국 롯데를 일궜다. 그 아들 신동빈 회장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본에서 쭉 자랐으니 일본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여러 외국계 회사를 거쳐서 현재도 일본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나름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보통의 한국인들에 비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친구부터 동료, 상사들과 20여 년 동안 관계를 맺어 오면서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느꼈다.
일본 방송과 뉴스를 접하면서 일본 주류의 시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나에게 "당신은 친일파인가?"라고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치면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반일파이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역사 앞에, 피해 국가에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는다.
패전국 독일이 주변국에 사죄했듯이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듯, 피해 국가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아무리 사죄해도 지나침이 없다.
역사적으로 왜구의 노략질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한일 강제합병 등으로 일본은 한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 누구가 과거는 잊고 미래로 나가자고 하는가? 일제강점기에 앞잡이 노릇한 매국노의 후손들인가?
아니면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인가?
조상의 고통 유전자가 후손에 전달되었을 텐데, 고통에 무감하다면 당신은 친일파의 후손인가?
경제면에서는 친일파이다. 내가 팔고 있는 일본 화장품 품질이 좋다고 믿고 있다.
더 많은 한국 소비자가 내가 속한 회사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점에서 나는 친일이다. 2019년 7월에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은 누군가 21세기 독립운동이라고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복잡하고 착잡한 심경이었다.
윤리적, 당위적 판단은 뒤로 하고, 대단히 폭력적이었다는 점은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다.
THHAD 배치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건 매우 폭력적이었다. 정치영역에서의 논리가 민간 소비자 경제로 연결되었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 불매운동도 매우 흡사했다. 해당 업종에 종사한 사람이 애꿎게 피해를 입었다.
시민 개개인의 경제 행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기를 바란다.
경제 주체들은 탈정치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뿐이다. 문화적 교류를 막지는 말기를 바란다.
일본인들이 한류를 좋아하는 것을 강제로 막아서는 안된다.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가고 일본 제품을 사는 것을 정치적 이유로 막아서는 안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믿는다. (일본인들은 다케시마가 자기 땅이라고 믿겠지)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을 비난한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신중해야 한다. 삼국을 통일한다는 명목으로 당나라를 끌어들이고 동학난(?)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를 끌어들이고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군사 협력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어령 선생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어보기를.
축소지향의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은 팽창하려 할 때마다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전국시대를 제패한 이토 히로부미는 '정명가도'의 たてまえ(다테마에: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를 내세우며 조선을 침략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동양평화를 내세우며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했다.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 전쟁에 패망한 일본은 반세기가 지나자, 우익을 중심으로 현 평화헌법을 바꾸고 군대를 갖는 것을 시대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 세대 간 충돌이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노년세대는 평화 헌법을 지지한다. 전후 세대는 일본도 군대를 갖고 힘을 길러야 한다며 평화헌법을 폐지하는 것에 찬성한다.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신 김구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높은 문화를 일궈야 한다.
한편, 자주국방의 힘을 키워야 한다.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은 경계해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거북선을 만들고 병사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선견지명을 오늘의 한국인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문화와 경제는 양국 간에 자유롭게 흐르기를 희망한다.
단, 정치와 군사분야는 역사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은 강해지면 언제나 팽창하려고 했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