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의 엘 클라시코 전쟁
스페인 축구 프리메라 리그의 최강 두 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엘 클라시코'라 부른다. 두 팀 경기를 단순한 라이벌 경기로만 상상한다면 당신은 '엘 클라시코'를 본 적이 없거나 축구에 문외한일 확률이 높다. 엘 클라시코에 입장하는 양 팀 선수의 표정에서는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비장함이 느껴지며,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와 FC바르셀로나 홈구장인 '캄프 누' 관중의 함성은 전장에 나선 병사의 승전을 기원하는 처절한 외침이다.
Dior 화장품에 입사해서 제일 특이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Chanel에 대한 경쟁의식이었다. ‘타도 샤넬’의 구호가 자연스럽게 외쳐지는 분위기였다. 그건 한국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등 다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경쟁의식은 브랜드가 태생한 프랑스로부터 비롯되고 각국 마켓에 주입된 것이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나 화장품 브랜드의 각국 지사는 매월 매출실적을 본사에 보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목표대비 실적 달성률, 전년 대비 성장률, 마켓 뉴스 등이 있다.
Dior에서는 특별하게 보고하는 중요 항목이 있다. 소위 'CHANEL INDEX'다.
CHANEL과의 매출 비교를 매장단위로 파악하고, 회사 전체로도 집계한 INDEX를 주요 평가지표로 삼는다.
예컨대, 특정 Dior 매장 매출이 1억 원인데, CHANEL 매출이 1억 5천만 원이라고 한다면 CHANEL 인덱스는 150이다. CHANEL INDEX를 낮추는 것이 아주 중요한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다.
70 여개의 점포에서 매월 실적보고를 하면서 CHANEL 인덱스를 100 이하로 낮춘 매장, 즉 CHANEL 보다 높은 매출을 달성한 점포의 매니저는 축하와 추앙이 뒤따른다.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 득점한 축구선수 정도의 박수와 존경심을 받게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의 월간 실적 리포트를 보았더니 그들도 역시 CHANEL INDEX 이야기가 단골 레퍼토리였다.
주요 백화점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의 자존심 경쟁은 매우 심하다. 패션 브랜드보다 경쟁의 강도가 훨씬 세다. 경쟁 브랜드보다 조금이라도 나빠 보이는 매장 위치를 제안받는 경우는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본사 경영진들도 경쟁 브랜드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입지에 매장 위치를 확보하는 것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는다. Dior과 Chanel의 더 좋은 매장 확보 전쟁은 치열하다. 한국에서는 CHANEL이 매출 우위에 있지만, Dior 도 LVMH 그룹 루이비통의 측면지원을 통해서라도 CHANEL과 대등한 입지의 매장을 획득하는 것을 주요 과업으로 생각한다.
전 세계 부호 1 위를 다투는 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몇 년 전 신세계 강남점을 찾았을 때
“DIOR 화장품 매장이 왜 CHANEL 화장품 매장보다 더 작은가”라고 백화점 대표에게 컴플레인과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수십 개의 명품 브랜드와 전 세계 수천 개의 매장을 소유한 오너가, 한국 백화점 1 개점에서 샤넬 매장보다 Dior 매장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며 시정조치를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룹 Owner의 디테일한 리더십과 함께 CHANEL에 대한 경쟁의식을 함께 느꼈다.
한국인이 아니면 일본인과의 라이벌 의식의 유래와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듯이 Dior 직원이
아니면 Chanel 과의 라이벌 의식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Coco
Chanel과 Chrisitian Dior 이 프랑스를 넘어서 전 세계 시장에서 이렇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경쟁하고 있는지 지하에 계신 두 분은 알고 계실까?
좋은 라이벌이 있는 것은 성장을 위해서 긍정적이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최고의 라이벌은 미국 프로야구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에 함께 속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이다.
“레드삭스 팬들은 딱 두 팀만 응원한다. 보스턴 그리고 양키스와 경기하는 팀”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양키스에 대한 보스턴 사람들의 적대감과 경쟁의식은 굉장하다.
한국시장에서 Dior 은 CHANEL을 꺾고 챔피언이 되는 것을 꿈꾼다. 레드삭스가 양키스 타도를 외치듯이 말이다. Dior에서 지금은 근무하지 않는 나에게 더 이상 CHANEL타도 의식이나 경쟁의식 따위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CHANEL이 레알 마드리드 같다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참고로 난 FC바르셀로나 팬이고, 앨 클라시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바르셀로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