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을 론칭하고 지켜보면서 느꼈던 이야기
사람들은 '무인양품’이라는 단어를 인생에서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브랜드를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2003년도 초, 인사팀 직원의 전화 너머로 '무인양품'이라는 단어를 난생처음 들었을 때
나는 "판매직원 없는 무인점포"를 떠올렸다.
내 상상과는 달랐다. 무인양품 매장에는 판매직원이 있다.
무인양품의 '인'은 '사람(人)'이 아니라 '도장(印)'이었다.
사자성어로 된 브랜드 '무인양품'은 '도장 없는 좋은 물건'이라고 해석된다.
여기서 의미하는 도장은 문서에 찍는 결재 도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좁게는 브랜드 로고이고 넓게는 화려한 디자인과 겉치장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무인양품이라고 하는 '가게 브랜드'에서 만든 수천 종류의 제품에
브랜드 로고를 붙이지 않겠다는 대담한 선언이었다.
2003년도 초, 인사팀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님, 무인양품 브랜드를 수입 론칭하려는데, 이동할 의향 있으세요?"
잘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였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겠다고 답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순한 부서이동이 아니라 회사 이동이었다.
지점 여성복 플로어 매니저였던, 나는 얼마 후에 본사 '무인양품 프로젝트팀' 바이어로 인사명령을 받았다.
몇 개월 후에는 프로젝트팀이 롯데백화점에서 롯데상사로 이관되었다. 난 그룹 내 계열사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무인양품 프로젝트 팀장이 되었다.
일본 출장을 가서 무인양품 매장의 콘셉트를 꼼꼼히 살펴보고 왔다.
수입 상품 구성, 상품 발주, 판매가 결정, 판매 시스템 구축, 인원 채용, 매장 인테리어 공사 등
해외 브랜드를 수입 론칭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마침내 2003년 11월, 명동 롯데 영플라자에 무인양품 1호점을 오픈했다.
무인양품을 론칭 오픈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백화점 직원들은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를 저가 싸구려 브랜드쯤으로 인식했다.
'할인점에나 어울릴 싸구려(?) 브랜드가 백화점에서 그토록 넓은 매장을 차지하다니' 내심 불만이었다.
평당 매출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백화점 직원의 뇌구조에 수백 평 면적에 단일 매장을 주다니, 이해 불가였다
그룹 오너가 지시한 사항이니 만큼 대놓고 반대는 못할 뿐 떨떠름한 표정이 가득했다
힘들게 론칭하고 나서 무인양품의 매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일본에서 무인양품이 인기가 있었던 사회적 배경에는 “히토리 구라시(一人暮らし, Single Life)”가 있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20여 년 앞서 1인 가구가 대세였다.
무인양품은 1인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브랜드였다.
수납용품, 생활용품, 잡화 제품 등에 화려한 포장과 디자인을 생략했다.
미니멀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한다는 콘셉트가 일본에서 통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낮았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가 방송을 시작한 시점이 2013 년 2 월이었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에서 1 가구의 증가세를 주목한 시점이 이 무렵부터였을까?
우연하게도 이때부터 한국에서 무인양품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1 인가 구수는 620만 가구이다.
전체 가구 2089 만 가구 중 30.2%를 차지하여 가장 많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1인 가구의 증가와 무인양품의 성장은 비례했다.
론칭 당시 한국의 무인양품 가격은 일본 가격 대비 130%선이나 되었다.
일본 본사에서 한국에 공급하는 상품 공급가가 그만큼 높았다.
무인양품은 일본에서는 합리적 가격의 질 좋은 브랜드였다.
'귤이 회수를 건너니 탱자가 되었다'는 중국 고사처럼
합리적 가격 브랜드가 대한해협을 건너니 값비싼 브랜드로 바뀌었다.
일본 판매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려고 노력했다.
한편, 한국 소비자물가 수준도 매년 올라갔다.
일본 물가 수준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처럼 제자리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의 소비구매력 수준이 언제부터인지 비슷해졌다.
한국에서 무인양품은 비싸다는 말이 사라졌다.
동시에 무인양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1호점을 오픈하고 나서 무인양품은 한국에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나는 합자회사로 가지 않고 롯데에 남았다.
무인양품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브랜드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무인양품으로 이동할 의향 있으세요?"라는 인사팀 후배의 말에 덥석 가겠다고 한 나의 선택은
이후 나의 직장 길 노선을 크게 바꿔 놓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늘 선택(Choice)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무인양품 브랜드로 이동을 결정한 건 나에게는 큰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외국계 브랜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상표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의미를 가진 무인양품은 제품에 어떠한 로고도 이름도 새기지 않는다.
하지만 무인양품 제품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양품(좋은 제품)인지는 소비자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로고나 이름을 표기하지 않더라도 어떤 브랜드인지 소비자가 알 수 있다는 것은
브랜드로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어느 사회 못지않게 간판과 이름에 연연한다.
유명 대학 간판을 땄는지가 중요하다. 간판을 따기 위한 비용과 시간 소모가 과도한 사회다.
그래서 자녀 사교육 비용 지출이 소득 대비 과도하다.
간판을 내세우는 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한다.
주거 공간도 이름을 내세운다. 삶의 질을 아파트 네임으로 판단한다.
래미안, 힐 스테이트, 롯데캐슬, 아크로비스타 등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으로 말이다.
대기업 명함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이라고 하지만 취업준비생은 대기업에만 몰린다.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가 제품에 내세운 가치처럼
우리 사회도 이름과 간판을 덜 내세우는 사회로 조금은 바뀌기를 소망한다.
간판이나 로고 대신 실력과 본질이 더 중요한 사회 말이다.
무인양품(無印良品) 브랜드가 존재감을 나타내듯이,
더 많은 무인양인(無印良人) 인재들이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사회,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