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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by justit

본격적인 장맛철이라 연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날씨가 흐리다. 자연현상이 사람 마음에 따라 맑았다 오므라 들었다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감정은 그것을 따라가는 듯하다. 마음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구름이 끼다가도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밝아지곤 한다. 그러다가도 습기 가득한 공기를 접하면 차라리 비가 내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바뀐다.
그렇게 계절도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사는 것도 그러할까?
매번 겪는 일이지만 종내 수월해질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끝내 동화되지 못하며, 투덜거리는 신음만
닮아 갈 것이다. 그런 여름철을, 또 겨울을 대체
얼마나 겪어 왔을까?
수치로만 계산한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러나 거기엔 시차를 안고 지체되었다 앞당겨졌다 하는 시간의 흐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웬걸!
시간은 관념상의 문제라, 사람이 흘렀다고 생각할 뿐 그것은 언제나 그대로 있다. 공간이 우릴 둘러싸고 있음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임종을 맞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아침이 밝으면 세상이 환해지고 정오의 햇살로 한낮을 데우다가 저녁놀은 하루를 질 지냈다는 격려를 보내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다음날이 또 열리고 닫힐 것이다. 이렇게 지나다 보면, 꽃이 피는 봄이 되고, 낙엽 지는 가을이 오고, 또 온 세상을 웅크릴 겨울이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시간이라는 유령을 인위적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동시에 시간이 멈춘 듯 거꾸로 밤이 새고 새벽이 온다. 겨울을 지나 얼음이 녹으며 들판에는 새싹이 반짝인다. 그럼 도대체 어느 것이 오가고 있단 말인가?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단지 변하는 것은 존재이며 현상이다.

줄기가 휘어진 나무를 보라!
어린 묘목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다가, 험한 강풍에 줄기가 꺾인다. 그 아래에서는 나뭇가지가 땅에 박혀 운이 좋으면 다음 봄에는 새싹을 틔운다. 새로운 생명이 솟아났지만 나무임에는 다름이 없다.
사람을 보라!
어린아이가 태어난다. 우리 유전자가 새 생명을 재현했다.
나와는 닮은 듯 닮지 않은 존재. 내가 어린 시절
그랬듯,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 누군가와 또 다른 일상을 닮은 듯 되풀이한다.
"어쩌면 제 아비 하던 모습을 그리도 빼다 박았지?"
"좋은 건 당신 닮아서, 안 그런 건 나 때문이지?"
산다는 게 데자뷔 같다. 시간이 과연 흘렀기나 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식 없이 사는 사람들은 대체 시간을 어디로 흘려보냈을까?
혹은 어디에다 묶어 두었을까?
그들도 시간의 질서에 맞게 똑같은 정지를 흘려보내고 있을까?
시간이 물처럼 흐른다고 여겨도, 어느 지점에서 멈췄을 뿐인 데 말이다. 쏜 화살을 정지시킨 제논의 역설은 정말 역설일까?

나무에게 다시 묻기로 한다.
비바람에 바스러지고 온갖 벌레에게 몸을 뜯기면서도 왜 해마다 새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그 수고로움의 대가로 열매를 맺느냐고?
그런 일이 있어 성장하고... 땅바닥에 쓰러져 버섯의 자양분이 되고...
그럼 무엇을 위해 그런 순환을 반복하느냐고?
흐르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
아니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해명을 해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에게 돌아간다.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시간이 흐른다면 그냥 두면 되는 일을 왜 악착같이 붙잡으려 하는지를?
결국 이유가 없다.
"그러셨군요!"
때로는 알 수 없는 해명이 가장 설득력 있다. 그렇지만 무엇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이 끝도 없는 의문에 시간은 흐른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 틀에 갇혀있으면서도 마치 바깥에서 쳐다보는 것처럼 말한다. 칸트 선생은 시간이 경험에 앞선
선험적 존재 조건이라 했는 데!
이런 사람은 알 수 없는 것 외에는 다 알 수 있는 전능함을 이불속에서만 외친 게 아닌가!
이불 바깥에서는 열린 우주가 펼쳐지는 데.
그렇구나!
나는 '시간에'가 아니라 '시간 속에' 머물러 있구나!
시간이 나를 꼼짝없이 붙잡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나를 관찰자처럼 바깥에 두고는, 착각해
시간이 흐른다고 말해 왔구나.
'착각'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아날로그시계 위를 가른다.
이 슬픈 푸른 눈동자는 여기서 출발하고 또 거기로 돌아올 뿐인 데, 어제는 둥근달, 오늘은 사막과 부딪힌다. 단지 그 속에서는 얼어붙은 시간, 생명이 말라붙은 시간일 뿐인 데...

이제 그 감금을 탈출하려 촘촘히 얽힌 그물망을 물어뜯는다. 하지만 워낙 강한 재료라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간혹 찢어진 그물코를 지나 밖으로 튀어나가는 양식어도 있다. 하지만 그물 밖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더러 양식장 주변 낚시꾼이 그들을 건져 올리면, 탈출한 고기는 자연산이다. 우스꽝스러운 타이틀이다. 그물 안과 밖을 경계로 순식간에 지위를바꾸다니!
그럼에도 시간을 저항해 거스러며 그 그물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걸까?
그물 속 세상이 차라리 좀 더 생명을 연장하는 안전지대는 아닐까?

시간에 갇힌 곳은 대단히 안락하다. 멈춘 시간 안에서는 애써 먹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낯선 천적에 물어뜯길 불안도 없다. 오늘은 어디에 몸을 숨겨 고요한 잠을 청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시간을 거슬리려 하는 시도는 불순하고 위험하다.
그러기로 하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조차 잃게 된다. 절망한 엑소더스는 예전의 편안한 공간으로 되돌려 시간을 멈추려 한다.
갖은 시도가 소용없음을 깨닫는 시간, 하지만 정말 우연히도 어부가 쳐 놓은 그물망이 보인다.
이 익숙한 장치는 커다란 반가움과 함께 마침내 되돌아갈 기회를 제공한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다시는 그곳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그물로 힘차게 향하는 물고기는, 한 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무리들과 함께 활짝 열린 아가리로 빨려 들어간다. 잡히지 않으려 퍼득이는 동료를 책망하면서 기꺼이 몸을 던진다. 비로소 제 살던 유토피아에 되돌아왔다.

고기를 잔뜩 안은 육중한 그물망은 인양기에 딸려 온 물고기를 양껏 토해 낸다.
어창 곳곳에는 붙잡힌 고기로 빼곡하다. 이들은 모두 혜택 받은 소수이다.
하지만 웬일일까?
예전의 안락함에 대신해 시간은 다른 모습으로 멈춘다. 공허한 눈동자는 하늘을 향하고, 차가운 얼음덩이가 몸통을 덮친다. 그리도 되돌리고 싶던, 시간이 멈춘 시간.
모든 재생산과 반복을 멈춘 시간!
아가미를 헐떡여 호흡할 필요도, 큰 덩지를 피해 달아날 수고로움도 없었는 데 말이다.

정말 이상하다. 분명 시간이 멈춰 평화롭고 쾌적해야 할 텐 데, 그게 아니다. 단지 여기저기 소란한 곳을 한참 떠돌아 저녁을 맞은 어느 집.
제 몸을 발라내며 그 위를 휘젓는 즐거운 시간,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뿐이니!
분명 나의 시간은 멈춰 있는 데 그들의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인가?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애써 맞출 필요는 없다. 멈춘 게 있으면 움직임도 있을 터. 그들과 동시에 있다면
나의 멈춘 시간은 옳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그물 밖이라 착각하며 착각거리는 시계 아래 있을 뿐일걸!

그럼에도 시계가 일제히 정오의 바늘을 한 곳에 모으듯, 우리는 똑같은 곳에 이를 것이다. 공간이 시간과 함께 모이는, 시공간이 일치하는 이런 때를 '이런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미 말하고 있다. '이런 때'를 '이런 시간..'이라 하면서 슬쩍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공간을 바꿔 멈춘 시간에서 탈출하고 또다시 돌아오는 몸짓으로, 결국엔 제 자리에서만 떠돌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시간은 단 한 번도 흐르지 않고 멈춘 것이라 한들 그게 무슨 큰 잘못이겠는가?

그는 멈춘 시간 속에 있다. 다시금 제논을 소환한다.
화살이 찰나로 공중에 머문 시간. 모든 것은 정지해 있다. 보는 눈, 내 짖는 탄성, 화살을 좇는 뜀박질.
되감아 보더라도 시간은 흘러 지나가는데, 앞으로 나아간 시간은 멈춰있다. 매 순간의 정지를 포착하는
몸짓. 참으로 멈춘 시간을 찾았다고 할까?
그런데 찾아지지는 않는다. 늘 멈춰있던 것에 정지를 요구함은, 애초부터 부당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그것을 겨냥해 화살을 쏜다. 화살은 매번 빗나간다. 시위를 당긴 것이 사실은 그냥 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은 과녁조차 없었다. 거기에 우리는 목숨을 건다.
모든 게 멈춰있는 늦은 저녁 한 때.
제논이 종신형을 선고받는 시간.
아마 정지한 태양은 내일도 뜰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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