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영화배우, 가수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신의 모습은 물론 목소리까지 비슷하게 등장하자 법적·윤리적 문제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뉴스 5.28] 인공지능으로 접근하지 못할 분야가 있을까? 노동에서의 해방이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는, 현재화된 것 중의 최첨단이라 할 수 있다. 이면으로 보면, 복잡화를 통해 전문가 집단이 존재하고, 상대적으로 과하다고 싶을 정도의 소득을 획득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과히 혁명적이며, 정상 수준이라 생각되는 몫의 분배 평등에는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다. 아렌트의 생각처럼, 인간의 기본 조건인 행위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에 따르면, 행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 활동이, 지나치게 낮은 단계로 내려와, 미를 추구하거나, 고도의 정신 활동이 작업이나 노동 수준으로 주저앉은 면이 많다. 어느 것을 상위에 두고 하위를 구분하는 것은, 어설픈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이라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클래식 음악, 순수 예술, 학문 등 그런 등급을 선정하고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가히 부르주아적이며, 구별 짓기에 불과할 뿐, 추구해야 하는 정신의 삶이라는 것이 가식적 탈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 그런 선을 긋는 세계를 AI는 돌파한다. 그에게는 어떤 허용치가 없다. 한 문장, 단어 하나만 포착되더라도 표절이라는 경고가 표시된다. 심지어, 전체 흐름이 비슷하더라도 이런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상미나 생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점에서는, 참으로 이를 피해 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적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많은 부문에서 이런 충격은 훨씬 강하다. 법률문제, 예술, 심지어 의료 행위까지 영역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있을까? 노동을 벗어나 행위에 전념하라는 취지는, 그마저 박탈해 버린다. 이것이 우려인지는, 각자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따위가 고작 그런 걸로 나보다 더 큰 인정을 받는다고?"
3.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AI 판단은, 세상을 투명하게 하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평가 기존을 객관화할수록 역설적으로 주관성이 쪼그라든다. 음험한 판단 기준을 암목적으로 승인하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세상을 획일화한다는 것이다. 우연성이란 없다. 탄생이란 우연성도 AI가 주도하는 유전자 조작이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획실성, 충분히 고려된 결과만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한계까지 밀고 갔어야 한다'는 말도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이 완성에 이르니, 미완성이란 것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함에서 무언가를 궁구 하는 동력을 획득한다. AI는 지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 더 이상 건드릴 게 없다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이 결함 없는 완전체는 더 이상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영원히 쓰레기일 뿐이다. 역사에 법칙이 있는 것처럼, 세상을 그렇게 꾸며 간다. 예외가 없는 완결판으로, 세계를 구성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과잉을 조절하는 데 쓰이기만 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규격화를 지향한다면 참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우연히 존재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지나친 사회적 렌트를 누리는 부문은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