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은선씨 Jan 06. 2025

매일 고구마를 먹는 여자

답답한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 우리 욕 좀 합시다


집에 혹시 그런 아들 있나요?
매일 고구마를 멕이는 아들  

 날래고 거칠고 시끄럽다는 여느 집 아들들과는 다른 이 녀석은 느리고 둔하며 순진하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특징. 착하다.  


 그럼 이 착한 것이 무슨 고구마를 매일 선물한다는 것일까.     


 착한데 상당히 느리다. 손가락도 느리다. 발가락도 느리다. 눈 깜빡이는 것도 느리다. 다 느리다. 지켜보고 있으면 숨이 턱 막힌다. 세상에 대부분의 일이 손과 발인데 손이 야무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상에나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아닌 어설픈 양손잡이다.

너는 무엇을 해도 참 엉성하구나

 발도 느리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잽싸지 못해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해도 늘 제일 먼저 잡히기 일쑤이며, 다른 친구를 잡지도 못한다. 술래잡기도 이러한데 다른 일에서도 불 보듯 뻔한 일.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항상 자신감이 없어 뒤에 선다. 참여를 하지 않을 때도 많다. 내가 답답함에 못 이겨 억지로 등을 떠밀면 "어차피 제가 제일 못할 텐데 안 할래요'" 하고 무릎에 힘 꽉 주고 안 떠밀린다.     


 방과 후 수업에서 3년 내내 배운 배드민턴은 5학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제일 아래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피아노도 2년째 배우고 있지만 이제 겨우 체르니에 들어갔으니 말해 뭐 할까. 학교 가방은 벽돌 마냥 무거워 열어보면 그 안에는 저번 학기에 썼을 법한 과제물들이 여전히 처박혀 있으며 언제 적 물인지 알 수 없는 무서운 물통이 노려보고 있다. 옷을 앞 뒤 거꾸로 입는 것은 예삿일이며 심지어 팬티도 두 장을 입어 나를 기암 시킬 때가 있으니 누가 알까 겁난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없다. 운동을 잘하거나 게임을 잘하거나 장난을 잘 치거나. 뭔가 흥미로와야 끌리는데 이 고구마 녀석은 공감받지 못할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 혼자 즐겁다. 친구들은 이 녀석이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유머를 이해하기에는 '이건 뭐야' 느낌이랄까.


 외모에 관심도 없다. 학교 간다고 나서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이대로 나갔다는 추노로 끌려갈 판이다. 바지 추슬러 줘, 윗 옷 내려줘, 더벅머리 빗어주고 마지막으로 신발을 확인하는데 끈이 다 풀려있다. '이 꼴로 다녔다?'인내심의 끈이 뚝 끊어지고 만다. '이 끈은 대체 언제까지 묶어줘야 하는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끊어 오른다.

며칠 전에도

"아니 찬아 다시 해봐.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라고. 좀!"

 몇 번을 가르쳐주었지만 짜증으로 끝이 났었지.

 신발을 보니 새삼 며칠 전 그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머리에 빨간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허리를 숙여 끈을 대신 묶어주는데 결국  연기에 잠식당해버린 나는.

"이거 언제까지 엄마가 묶어줘야 해?" 

 기어이 퉁명스러운 말 뱉고 말았다.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 그렇게 다분히 노력했건만 결국 이 한마디를 참지 못해 아이 에 눈물이 맺히게 만든다. 미안한 마음 상황을 수습해 보려 급히 말을 던져본다

"사랑해"

"저도요"

엄마 마음 상할까 눈에 습기를 가득 머금고도 억지로 웃으며 손하트를 내미는 착한 첫째를 보니 마음이 저릿한다.

'내가 또 몹쓸 짓을 했구나. 그 끈이 뭐라고. 언젠가 배워도 배울 것을'  

하지만.

'학교 가서 신발 끈 또 풀리면 어쩌지? 친구들이 놀릴 텐데. 울더라도 끝까지 가르칠걸 그랬나.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하니까 아이가 못하는 거 아냐? 내가 더 몰아붙여서라도 가리켜야 했는데.'     

마음의 소리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다.


휴. 오늘은 그놈의 신발끈이었지만. 각 종 과제, 준비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를 발생시키니 하루에도 번씩 이해와 불안의 마음의 소리가 왕래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곰탱이 고구마 녀석의 사춘기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야무지지 못하게 행동해도 내가 한마디 거들거나 도와주면 넘어가졌는데 이제는 엄마 말이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간섭은 일절 사양할께요

 얼마 전 일어난 코막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지금은 1월 한겨울이다. 너무 추워서 이가 달달 떨리는 시즌. 이런 날씨에 이 녀석이 잠바를 깜빡하고 축구 수업을 간다며 나간 것이다. 잠바 없이 얇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차량을 기다리는 녀석을 목격하고 당장 집에 가서 잠바 가지고 오랬더니 자기는 절대 안 춥단다.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덜덜 떨면서도 그냥 가겠다는데 기가 찰 노릇이다. 무딘 성격은 기막히고 코막힐 상황을 만들어 내는데 사춘기라 자존심은 생명이니 얼어죽더라도 나의 의견은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것. 며칠 전 교복입고 반팔로 지나가는 중학생을 보며 남편과 사춘기 병이 심하게 들었네. 자기가 멋있는 줄 알텐데 추워서 어쩌누 하고 걱정의 소리를 나누었는데 그 아들이 내 아들일 줄이야.

 '그래? 그럼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 추워서 머리털끝까지 덜덜 떨려봐야 다시는 잠바 잊고 나오는 일 없겠지.'     

 '그런데 괜히 내가 오기 부렸다 애 감기 들어 고생하는 거 아냐?'     

0.5초 사이에 또 마음의 소리가 오간다. 하지만 이번엔 오기의 승리.     

"진짜 안 춥겠어? 후회 안 하겠니?"     

"네. 진짜 안 추워요"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네가 겪어 봐야 알겠지'의 마음이다.      

그날 그렇게 마른 가지처럼 입고 나간 녀석은 집에 돌아와서도 일절 추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곰탱이 주제에 자존심은.

추운 겨울날이 이러니 더운 여름날도 이런 에피소드는 허다하다. 8월 찌는 한여름날에도 긴팔을 입고 나오는녀석을 보며

"아들아. 한여름에 긴 팔은 아니지 않니?"

"왜요? 여름에 긴 팔 입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요? 전 저예요. "

미친놈.


 너무 아들 욕만 했나. 시원하게 내뱉긴 했지만 부끄러운것은 어쩔수가 없다. 급하게 포장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만

이 곰탱이 고구마 녀석에게도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게으르니) 상대적으로 뒹굴뒹굴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쓰는 건 영 싫어합니다. 손가락 따위 움직여야 하니까요)

 의외로 대범하다. 신기하게 소심하지가 않다. 딱 봐도 저를 무시하는 친구인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먼저 인사한다. 절대 반지는 없어도 밟아도 밟히지 않는 절대 밝음이 이 아이에게는 있다.

 예의도 바르다. 규칙도 잘 지키는 범생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니 배려심도 깊다. 이러한 이유들로 어른들이나 선생님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어디 데리고 가도 미운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는 '착한' 아이다.


착한 아이를 키우는 고충이란.

매일 고구마를 10개씩 먹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글의 마무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우주는 광활하고 잠재력은 알 수 없으며 앞으로 얼마나 좋은 어른이 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응원하라.

라고 훈훈하게 맺어야 하겠지만.


 저는 오늘도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별거 있나요.  머리맡에 누워 예쁘다 예쁘다 쓰다듬어 주고 뽀뽀해 주고 재운 다음 시원하게 냉수 한 컵 들이키고 그냥 잘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