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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은선씨 Dec 03. 2024

피구? 피구!

거북이 아들의 슬기로운 학교 생활: 그놈의 피구가 무엇이길래

 오늘의 거북이집 이슈는 피구.


'띡 띠리리릭' 오늘도 어김없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구마 거북이의

“엄마아” 가 들려온다.

나는 목소리 감별사. 엄마하고 문을 여는 소리에 벌써 억울함 몇 방울이 묻어있는 것을 눈치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니?     


 오늘의 이슈인즉슨, 체육 시간에 피구 경기 했단다. 우리 집 고구마 거북이는 왼손 새끼손가락에 실금이 가 반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 신경 꽝인 거북이가 팔이 묶인 상태이니 피구는 무리 중의 무리. 하지만 피구가 무엇인가. 체육 시간의 꽃 아닌가. 피구를 못하는 체육 시간은 앙꼬 없는 붕어빵이다. 비록 부상 상태이긴 하지만 공을 피해 끝까지 좀비처럼 살아남아 보겠다며 거북이가 게임에 참여를 했단다. 하지만 그 손으로 피구가 될 턱이 있나. 더욱이 거북이 팀은 지고 있었고 이기고 싶은 아이들은 약점이 된 거북이에게 빠지라고 했단다. 여러 명이 입을 모아서.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 다정히 말하는 요령을 배우지 못한 4학년 아이들은 다소 거칠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거북이 너 빠져”


 거북이는 학교에서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자격지심 더 슬프게 만들었을까. 체육 시간이 끝나자마자 교실로 돌아와서는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거북이가 행동이 굼뜬 고구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잘 울거나 눈치가 영 없는 친구는 아닌데. 주제에 또 자존심은 꽤나 높다. 친구들이 놀려도 앞에서는 능청스럽게 “그게 왜. 어쩌라고” 라며 던져놓고는 집에 와서야 문 닫고 우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자존심도 버리고 교실에서 울었다는 것은 많이 슬펐다는 말.


 웬만해선 눈에 힘 꽉 주고 눈물방울을 떨구지 않으려는 아이라는 걸 아시는 담임선생님께서도 들썩는 거북이 등을 보시고는 많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선생님께서 수업시간 반을 할애해 친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거북이는 선생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신 것에 위로를 받고 마음이 풀린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은 먹구름을 한 아름 어깨에 지고 또 방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썼겠지.




 선생님 덕분에 누그러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거북이는 내게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럴 때 엄마는 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객관적으로, 사과를 정확히 반쪽으로 나누듯이 . 그리고 냉철 판단력으로 정의로운 충고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땡. 아닙니다.


‘아들.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아? 지금 우리 편이 지고 있는데 깁스한 녀석 따위 빼는 게 맞잖아. 너 때문에 경기를 지게 생겼다고’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냉수 한 잔에 다행히 삼켜졌다. 그리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다음.


“아이고. 반 친구들이 왜 그래. 깁스했다고 다 못하는 것도 아. 잘 피할 수도 있는데. 말을 왜 그렇게 못땠게 했을까. 여자 친구가 발로 차기도 했어? 그건 진짜 그 친구가 잘못했네. 여러 명이 한 명한테 그러는 건 아니지. 선생님이 혼낼만했구먼. 진짜 속상했겠다. ”


일단 폭풍 공감으로 올라간 분노게이지를 낮춘다. 그리고 눈치를 슬쩍 본다. 꽤나 만족하는 것 같은 입꼬리이니 여기에 MSG만 좀 더 뿌려지면 급한 불은 꺼지겠다.     


“똑같이 한 대 차지 그랬어. 욕도 좀 하고. 참지 말고 확 해버리지”

“엄마. 그래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엄마가 폭력은 폭력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면서요. 엄마 아들 그렇게 가리키면 안 돼요"

”아니. 너 화 많이 났을 것 같아서 “

”그래서 선생님께 이야기했어요. 선생님께서 애들 혼내 주셨어요. ”

“우리 아들 선생님한테 진짜 잘 안 일러바치는 거 엄마가 잘 아는데 오늘은 화가 많이 났었나 보네. 선생님이 잘 이야기해 주셨다니 다행이다”     


나의 메서드 연기가 통했다. 나 아직 살아있네.      


“그런데 엄마. 애들이 나한테만 자꾸 뭐라고 해요. 욕도 막 하고. 어제도 아무 이유 없이 내 귀에 대고 욕 했어요”     


에잉. 이건 또 무슨 소리. 아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높였던 가짜 언성이 아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에게 화살처럼 돌아와 나의 분노 과녁명중 시킨다. 열받네.     

안돼. 안돼.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아들을 앞에 두고 쓸 수 있는 모든 뇌세포를 빠르게 가동해 현실을 직시해 본다.   

   

거친 남자아이들의 세계다. 고구마 거북이는 거칠지 않다. 엄마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거북이는 센 말을 내뱉는 친구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자기에게만 거친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자기에게만 그러는 것일까? 내가 봤을 땐 입이 거친 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도 별뜻없이 험한 말을 주고받을 것 같은데. 그런 말들이 일상어가 되어 얼마나 나쁜 뜻인지 모르고 멋있는 척, 센 척, 장난처럼 뱉어냈을 텐데. 고구마 거북이가 자기에게만 그런다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찬아. 친구들이 욕을 하는 건 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욕 하는 건 나쁜 일이지만 넌 친구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니니까 하지 말라고 이야기만 할 수 있을 뿐 더 이상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친구들도 싫을 거야. 뒤로 숨는 일일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다' 하고 지나갈 수도 있어야 돼. 지금 남자친구들이 사춘기를 앞두고 좀 거칠어지는 시기잖아. 욕을 하면 뭔가 쎄 보이고 그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너한테 욕을 한 그 친구는 다른 친구, 또 다른 친구에게도 아마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네가 특별히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거친 말의 유혹에 빠져 있어서 누구에게나 가볍게 하는 말일수도 있어. 그러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 친구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네가 진짜 그런 사람 되는 것은 아니잖아. 그냥 에잇 하고 귀 한 번 씻어버리고 넘어가는 건 어때? 남자의 세상은 그런 함도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들은 솔직한 나의 대답을 이해하는 듯했다.      


 난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자도 아니다. 그러니 아들에게 정답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세상이 거칠다고 투정만 할 수는 없다는 것. 세상은 다 내 맘 같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으며, 슬프지만 힘의 논리가 존재해서 정의롭지 않은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단다. 이런 일들도 받아들이면서 나를 망가트리지 않고 잘 지켜나가야 건강한 어른이 되는 거야.


 오늘 내가 아이에게 해 준 말들이 옳은 말인지 아닌지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나 또한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얼렁뚱땅 엄마가 너를 만나 내가 너를 키우는 것인지 네가 엄마를 키우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넓은 바다 한가운데 거친 파도 속에서도

동글동글 몽글몽글 매끄럽게 다듬어져

따개비도 거북손도 지렁이도 소라게도 모두 다 품어주는

저 우뚝 솟아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위가 되어보자

그렇게 우리 함께 어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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