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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Aug 31. 2017

언젠가 너로 인해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예정일을 한 달쯤 앞두고 있던 어느 가을날의 퇴근길. 빨간 버스에 무거운 몸을 싣고 여느 때처럼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보는데, 그 날따라 어떤 노래의 가사가 귓가에 유난히 선명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 가을방학 '언젠가 너로 인해' 中


가을을 타고 있어서였을까. 출산을 앞두고 엉망이 된 호르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딘지 모르게 처연한 보컬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나는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데도 어쩐지 먼 훗날의 내 얘기만 같아서, 한번 시작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만원 퇴근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는 임산부는 좀 과한 모양새인가 싶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눈물을 닦아냈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났다. 말 그대로, 이 아이로 인해 내 생활의 참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우선, 친정부모님이 옆동네로 이사를 오셨다. 순전히 아이를 봐주시기 위해서였다. 아빠의 일은 원래 살던 곳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결혼 이래 처음으로 주말부부가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직을 했다. 원래 다니던 회사는 아이를 키우며 오가기엔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는 친정부모님이 이사 오신 집의 옆 동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출퇴근길에 조금이라도 아이를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 아이의 탄생이 가져온 변화는 이렇게나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변화를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아이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맞춰나가야만 했다.


사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대리를 달기까지 5년이란 시간을 보낸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이십 대 후반이 전부 거기에 있었다. 연애도, 결혼도, 임신과 출산도 전부 그 회사를 다니며 일어난 일이었다. 언제든 다시 출근해도 내 자리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만 같은 회사를 관둘 생각을 하니, 며칠간 꿈에 회사 사람들이 아른거렸다. 결혼 전부터 함께 들어와 살았던 신혼집은 또 어떠한가. 주말마다 집이 얼마나 지어졌는지 확인하러 다녀오는 것이 우리의 데이트 코스였다. 그렇게 지어지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각자의 자취방에서 쓸만한 살림 조금씩과 함께 고른 살림을 마저 채워 넣어 마침내 완성한 우리의 신혼집.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자 시야가 뿌옇게 번졌다. 


아기라는 거대한 기쁨을 만나는 댓가로, 내 몸에 익숙했던 크고 작은 것들과는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누군가를 떠나고 떠나보내는 일이 익숙지 않은 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더 단단해져야만 했다. 미련과 감상을 뒤로하고 나는 틈틈이 면접을 봤고 바지런히 이사 갈 집을 알아봤다. 가끔 울컥했지만 꿀꺽 삼키기도 하며.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모든 것이 변했다. 그렇게 내 세상의 중심은 온통 아이, 오직 아이로 바뀌었다.


요 조그마한 것의 영향력이란.


아이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나도 모르게 종종 하게 된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 집에서. 그 직장에서. 그 사람들과. 그 일을. 여전히. 변함없이.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등장(!) 덕분에 내 인생도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 셈이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이 변화의 파도에 몸을 실어보기로 한다.  몸에 힘을 빼고 둥실 두둥실 떠 다니다 보면 상상도 못 했던 곳(기왕이면 멋진 곳이길)에 도착해 있을 것만 같다. 그 역시, 이 아이로 인해서겠지. 앞으로 남은 긴 인생. 너로 인해 나는 많이 울고 또 많이 웃게 되겠지.


11개월 전 그 노래를 다시 꺼내 듣는다. 그때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가사는 마음을 파고든다. 가을이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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