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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Nov 15. 2021

크라브마가 스파링, 때렸습니다

반칙 없는 무술, 크라브마가의 재미

“더 때려봐, 더! 때려 때려”

관장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팔을 더 뻗어서 얼굴을 가격하려고 노력했다. 상대방의 가드에 막혀 얼굴 중앙을 때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상대방이 공격을 하려고 손을 뗀 사이 틈을 노려 훅으로 머리 옆 쪽을 터치하는 데는 성공했다.


3개월 만에 스파링. 나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 스파링이 눈을 감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제법 상대방의 얼굴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이날 스파링 파트너 중에서는 족히 185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남성도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도 얼굴에 손이 닿지 않는 건 물론, 디펜스 킥으로 상대방 배에 발을 올리려고 해도 닿지 않았다. 그래서 디펜스 킥으로 허벅지를 찼을 정도였다. 물론 현실 속 나쁜 상황이라면 낭심 차기를 할 수 있는 키 차이기도 했다.


또 점프를 해서 얼굴을 쳐야 했을 지경이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손을 뻗고 있는지, 또 상대방이 어디로 나를 공격하고 있는지 느낄 새도 없이 얼굴을 방어하던 지난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한 번의 스파링이 끝날 때까지 나는 상대편의 얼굴을 여러 번 가격할 수 있었다. 남자 대 여자라 워낙 상대방이 힘을 빼주기도 했고 키 차이도 너무 나서 배려해 주신 덕이기도 했다.


“너무 많이 맞아주셔서 어떡해요.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힘만 뺀 거지 잘하셔서 맞은 거예요.”


이후 10분마다 여러 번 대련 파트너가 바뀌었는데 한 번도 빠짐없이 얼굴을 때릴 수 있었고 여전히 숙련되지 못한 내 실력에 봐주신 덕인지 나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숙련자들은 미숙련자들을 배려해서 스파링 중에도 방법을 가르쳐주거나 자신은 때리지 않고 맞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관장님은 아예 자신의 얼굴은 대놓고 드러내 놓고 때리라고 주문했다. 자꾸만 더 때리라는 말에 진짜로 때리고 만 나는 끝날 때 “오늘 차나한테 제일 많이 맞았네”라는 말을 듣게 됐다. 관장님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아픈 시늉을 했고 나는 “맞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체육관에 왔는데 한 시간의 스파링이 끝나자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 있었다. 집중했던 만큼 뿌듯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관장님의 코멘트가 없어도 실력이 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손 틈만큼의 향상이라도, 누군가와 대련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성장이라고 느껴졌다. 


성취도 경쟁도 아닌 스스로의 성장에 목마른 나는 내가 얼마나 늘었느냐에 늘 관심이 많다. 또 늘지 못했을 까 봐 전전 긍긍하고 늘 관장님께 ‘왜 이렇게 빨리 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나였다. 역시 나를 의욕나게 하는 건 성장 동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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