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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May 01. 2022

반년만에 약 없이 잠들었습니다.

우울증 그리고 그 후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 150일이 지났어요.

이 알람을 받은 지도 2주가 지났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지 거의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우울증과 지난 회사에서의 나쁜 기억에서 많이 빠져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약의 양이다. 많을 땐 아침, 점심, 그리고 자기 전까지 하루 세 번 약을 먹던 것에서 자기 전 약으로 단 한 번 먹는 것으로 변했다. 


두어 달 전쯤 주치의 선생님이 낮 약을 끊고 밤 약만 처방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의 시작을 함께 했던 약이 없어졌다.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낮 시간대에 먹던 것과 같은 약이 자기 전 약으로 처방됐고 이미 많이 나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2년 중 처음으로 저녁 약도 먹지 않고 잠에 들 수 있었다. 너무 졸려서 약을 챙겨 먹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동안 한 번도 약을 먹지 않고 잠에 드는 데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하루 중 단 한 번도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생활한 것이다.


이어 어제 다시 한번 약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데 성공했지만, 약을 먹을 때는 잊고 있었던 감정이 조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새로운 회사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지만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또 무엇보다 실내가 숨 막히게 느껴지는 기분과 비염으로 인한 코 막힘,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 등 지난 시간 우울증으로 느꼈던 증상을 다시 겪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아주 작은 불안이라는 식물이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두려웠다. 그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약의 힘을 빌렸을 때는 눌려있던 불안이라는 녀석이 언제든 다시금 고개를 들어, 괴로운 소용돌이에 갇히게 만들 수 있다는 느낌. 나는 결국 어제저녁에 먹지 않았던 약을 오늘 아침에 먹었고, 수면제 성분이 조금 포함된 탓에 낮잠을 자게 됐다.


잠에서 깼을 때는 완전히 말끔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금 흔적조차 사라진 불안의 씨앗. 약을 먹을 땐 이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기까지 했다. 

아직 완전히 낫지는 못했구나. 조금은 아쉽지만... 여기까지 줄여온 것도 크게 개선된 것이다.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너무 아팠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아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팠던 지난 일 년. 이제는 설사 똑같은 일 혹은 더한 일을 겪더라도 그때만큼은 아파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나쁜 기억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모르겠다. 내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장롱 속 이불처럼 반듯하게 개어져 내 안에 들어있다. 굳이 꺼내보지 않는,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날들도 있지만 이번 주말처럼 약을 먹지 않으면 불쑥 나를 찾아와 존재감을 나타내곤 한다.


모든 걸 잊거나 이기고 살 수 있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나는 틀림없이 이전보다 강해질 것이다.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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