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겠거니, 생각하게 되는 침묵이 불편하다.
오고 가다 슬쩍 부딪혀도, 엘리베이터를 갑자기 끼여 타도 미안하다고도 고맙다고도 잘 말하지 않는 이것도 문화의 일종일까?
사내에서는 동료에게 불만이 있거나 의문이 생겼을 때 직접 물어보기보다는 추측하고, 뒤에서 말해 상대방과의 거리 늘리기만 이어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지하철에서 또 사무실에서 핸드폰이나 모니터가 아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크게 내서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혹시 그 점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라고 말하지 않는다. 목까지 소리가 잠긴 좀비일 뿐이다.
만약 사소한 것이라도 오해와 미움이 쌓이기 전에 묻고 대화하면 어떨까? 또 마치 공작을 벌이는 팀 마냥 뒤에서 메신저만 주고받는 것 대신, 눈을 맞추고 얼굴을 보고 말하면 어떨까.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 분명 있지만 메신저와 침묵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사람은 얼굴을 자주 보아야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는 가까운 어른이 하신 말을 곱씹게 되는 날들이다.
2019년 9월에 공책에 끄적인 이야기다.
전 직장에 다닐 때 쓴 벌써 3년 가까이 된 이야기인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참 그때는 그랬다 싶다.
그로부터도 2년을 더 다녔으니 곪을 때로 곪은 회사생활이었다.
나는 여전히 직장인이고 사내 메신저를 이용하고 있지만 지금은 침묵 대신 대화가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타인이 지옥이라고 짐작하지 않는 지금,
지옥은 지옥임을 깨달은 자가 먼저 벗어나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