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짙은 이유는 햇빛이 뜨겁기 때문이다. 아픔은 기쁨의 그림자다. 두서없는 이 글의 모음은 그림자의 변명이다. 어느 날 모든 글들을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지만, 카프카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은유나 상징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자주 느낀다. 그것은 직관적이지만 언어로 표현하려면 너무나 복잡해진다. 내 어휘가 부족한 것일까, 이 감정들을 표현할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사랑, 우울, 환희, 좌절, 이런 단어들은 너무 포괄적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아무런 감정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아니면, 누군가는 저런 쉬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려 단어를 고르다가 포기한다.
표정으로 표현하려 해도 입가에 미세한 경련을 숨길 수가 없다. 아픔을 숨기고 환희를 좇으라는 명령을 쉽게 어기지 못하는 탓이다. 언젠가 내가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때 나는 정말로 환희를 느낄지도 모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나의 진솔한 표정이 환희일 것을 생각하니, 그 날이 기다려지며 미래가 밝아보이기도 한다.
아무렇게나 놓여진 옷가지들에는 각자의 추억이 담겨있다. 시간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물건을 내다버리지 못한다. 시간을 내다버리는 것 같다. 아마 이것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첫번째 장애물이리라.
하지만 그 시간 속에는 나의 밝음과 어두움이 모두 담겨있다. 내가 요즘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어두움에 관한 것들인데, 또는 그 자체가 어둠인데, 그 시간 속에는 나의 밝음도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도통 버릴 수가 없다.
날이 추워졌다. 겨울 냄새를 처음 맡고서도 몇 주가 지났다. 아직 11월이지만 폭설이 내렸고 기온은 섭씨 0도를 하회한다. 오랜만에 추위를 느낀다. 살갗을 간지럽히는 추위를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하지만 밤이 되니 다시 추위가 두렵다. 이렇게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