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모르지만 재즈를 듣는 건 좋아

by 이원소

안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역치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을 인터넷을 하다보면 자주 느낀다. 댓글들을 보면 온통 전문가 천지다. 잘 알지 못했던 지식들을 많이 접한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틀렸다. 이런 경험들을 자주 한다.


퇴근하고나면 재즈를 자주 듣는다. 스피커로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이 한 가닥의 연주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재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부해야 할까? 우리는 얼마나 알아야 할까? 얼마나 많은 지식을 상식처럼 여겨야 할까? 나는 재즈를 들을 자격이 있을까?


한창 좋아하던 밴드나 가수의 일대기에 대해 나는 항상 몰랐다. 그저 그들이 내놓은 앨범과 곡들로만 그들을 느끼고 즐겼다. 가사에 애절한 사랑이 나오면, 애절한 사랑을 했나보다-했다. 하지만 최근 여러번 실망을 한다. 그들이 그저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그렇다.


사람들이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이나 내가 하는 말들로만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의 어두운 면,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프다'고 정의해놓은 면이라던가, 얄팍한 도덕적 잣대로 판단되어서는 안되는 나의 내면을 누구도 몰랐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에 대해서 더이상 알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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