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보다 더 울고 싶던 날들
일할 때 직장 상사 앞에서도 거침없이 내 생각을 말하던 나.
그런 내가 육아를 시작하자, 어느새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2~3시간에 한 번씩 깨야 하는 수유. 잠은 쏟아지고, 몸은 무겁고, 나는 마치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된 듯했다.
디데이가 임박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임신교실도, 수유 교육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바로 복직을 할 생각이었기에 "요즘 분유도 잘 나오잖아"라며, 나는 분유 수유를 당연히 생각했다. 내게 모유수유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응급 제왕절개.
그리고 수술 후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현실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진통제요.. 맥스로 넣어주세요."
수술 후 고통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어마어마했다. 한 마디로 배를 갈라 아이를 꺼냈으니... 수술 자국은 나의 훈장이자 난생처음 겪어본 고통의 기억이다. 제왕절개하고 바로 걸어 다녔다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뱃속에 아이가 없으니 바로 누울 수 있어서 편하다는 생각도 잠시, 세상은 나에게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간호사는 말했다.
"오늘부터 움직이셔야 해요. 유착 생겨요. 일어나서 복도라도 조금씩 걸으세요."
누워있는 것도 아픈데 움직이라니... 나에게 그 말은 너무 냉정하게 들렸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날 일으켰고, 으아아아악~~~~~~~~~~~~~~~~~~~~~~~~~ 고통은 내 전신을 삼켰다.
일어나 앉는 데에는 정확히 2시간이 걸렸다. 그때 모유수유 전문 선생님이 병실을 찾아왔고, 나에게 유축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나의 몸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마사지를 시작하셨다.
"딱딱하게 뭉쳤어요. 이러다 유선염 오니까 유축 잘하셔야 해요. 정 안되면 퇴원하고 오케타니라도 받으세요"
내 몸은 이렇게 또 낯선 누군가의 손에 맡겨졌다. 유선이 단단히 뭉쳤다며 마사지를 시작하신 선생님 앞에서,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악- 소리를 질렀다. '엄마 됨'이라는 관문을, 나는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모유수유를 하게 될 줄 알았라면, 미리 조금이라도 준비했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참고로 회당 10만 원이던 그 '오케타니 마사지'는 훗날 단유를 포기하고 세 달이나 더 수유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은인이 되었다.)
힘이 들 때마다 '내가 엄만데...'라며 자책했다. 내 감정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호르몬은 시시때때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후우울증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혼자 아이를 보다 보면,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나곤 했다. 나는 점점 남편에게 의지했고, 그것이 처음에는 참 편했다. 하지만 점점 남편이 육아의 중심이 되자, 고마움과 함께 묘한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안 힘들어?"
"응, 나나랑 재밌게 잘 놀았는데?"
냉장고에 넣어둔 유축 모유를 잘 먹지 않던 아이. 혹시나 배고파 울까 봐 서둘러 돌아온 나는 안도감과 함께, 묘한 서운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그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정확하게 명명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