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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사생활

육아만렙 아빠의 등장

by 소금라떼



“어머, 혹시 아이가 000 유치원 다니지 않아요?”
“네, 맞아요. 저희 아이를 아세요?”
“저희 아이가 000 유치원 졸업했거든요. 작년에 등원 버스 같이 탔었어요. 안 보이길래 이사 간 줄 알았어요.”
“아.. 출퇴근 시간 때문에 데려다주는 걸로 바꿨어요. 그런데 기억하시네요? 몇 번 안 탔는데...”
“항상 아빠한테 안겨 있어서 기억하죠. 아빠가 엄청 아이를 잘 보시더라고요.”


놀이터에서 아이랑 그네를 타고 있는데, 기다리던 엄마가 나나를 알아봤다.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다.

처음 보는 아이 엄마들에게서 “아빠가 아이를 참 잘 보시더라고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

올해부터 우리는 다시 유치원 버스를 타기로 했고,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맘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같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은 오랜만에 보는 아이를 반가워했고, 엄마는 처음 본다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아빠' 이야기였다.


“아빠가 아이를 참 잘 보시더라고요.”


내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와 아빠가 어떻게 지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들이었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의 친구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나 엄마, 나 지난번에 성모소아과에서 나나 봤어. 아빠랑 같이 왔던데?”
“응, 그날 아빠가 하원 담당이라 끝나고 같이 병원 갔을 거야.”
“나 깜짝 놀랐잖아. 진료 끝나고 나나 아빠가 한 팔로 애를 안고, 다른 팔로는 장 본 거 들고 걸어가시더라고. 끝나고 가서 밥 해 먹인다고 하시더라~ 우리 남편은 그런 상황이면 시켜 먹었을 텐데… 퇴근하고도 다 해먹이시나 봐~~”


그렇다.
남편은 한 팔로 아이를 들 수 있고, 요리도 잘한다.

또 뭘 잘하지? 육아는… 거의 다 잘하는 것 같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이를 꼭 한 명은 낳자고 말해왔지만,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는 충분하지 않았다. 조금 더 미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예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히는 순간부터 남편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언제 준비가 안 됐었냐는 듯.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이미 준비된 아빠처럼 척척 모든 일을 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고 보니, 그건 남편의 노력이었다.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안 순간부터 블로그, 유튜브 등의 검색을 통해 신생아 돌보는 법, 수유 방법, 수면교육, 아기 울음의 이유 등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 역시 아빠의 온전한 사랑을 그대로 느끼며 자라나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은 단순히 '육아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아빠 육아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도서.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

EBS 다큐프라임 <아빠 놀이 엄마 놀이>에 소개된 리처드 플레처 박사의 저서이다.


대학원에서 교재로 사용했던 책으로, 아빠의 양육 참여가 아이의 두뇌 발달과 정서, 사회성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 연구와 실제 사례를 통해 풀어내기 때문에 쉽게 읽혔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만약 남편의 육아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싶다면, 이 책을 슬그머니- 권해보면 좋을 듯하다.






- 국제뇌교육협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빠가 자녀를 사랑하면 아이의 뇌 발달이 더욱 향상되며, 아빠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아빠의 양육태도는 자녀의 '자아개념'이나 '또래 관계'와 상관이 있고, 아이들이 대인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세상과의 연결 고리'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형성하면 아이의 인지적 발달과 사회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






“엄마는 네가 유아교육과 나와서 애를 진짜 잘 볼 줄 알았어. 근데 육아는 강서방이 더 잘하는 것 같아.”
“엄마! 나는 유아 전공이지, 영아는 아니잖아!"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위해 두 달간 우리 집에 머물렀던 친정엄마의 말씀이다.

호르몬의 탓이었을까?

그 말이 그리 서운할 일도 아닌데, 왜 그리 정색을 했는지. 고생하러 온 엄마에게 버럭 했던 내가 참 미안하다. 그리고 사실, 유아교육과에서도 영아발달은 배운다. 알고 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매사 버벅거리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그 모든 게 ‘무서움’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를 놓칠까 봐, 다치게 할까 봐.






첫 번째 난관. 목욕


조리원에서 아이 목욕법을 배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출산을 앞두고 코로나19가 터졌다. 남편은 조리원에 들어올 수 없었고, 나는 혼자 배워야 했다. 남편은 베테랑 산후조리원장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인형을 안고 아기 목욕시키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나는 조리원에서 딱 한 번 시범을 봤고, 너무 순한 아이의 모습에 ‘나도 할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집으로 온 첫날, 아이는 목욕 내내 자지러지게 울었고, 나는 그 이후로 목욕 시간이 두려워졌다. 결국 목욕은 꼭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고,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목욕은 항상 남편이 주도했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 독박육아로 뭐든 혼자서 척척 해왔던 친구는 혼자서 남자아이 둘 도 거뜬히 목욕시킨다며 나를 엄살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무서운 걸 어쩌랴..



두 번째 난관. 손발톱 자르기


사진. 영유아 손톱가위

물론 아기의 손발톱을 자르는 것도 남편 몫이었다. 작은 영유아 손톱가위. 그 두꺼운 손가락을 작은 가위 구멍에 조심스레 넣고 혹여 베일까 봐, 손을 꽉 잡지도 못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손톱을 자르던 남편의 모습. 고마우면서도 안쓰럽고, 나는 무서워서 차마 시도도 못했다.









세 번째 난관. 응가한 후 엉덩이 씻기기


절대 잊지 못할 하루가 있다. 엄마가 가시고, 남편도 출산휴가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이제 집에는 나와 아이, 단둘이었다.

사진. 아기 비데

내게 가장 무서운 건, 응가한 뒤 아이 엉덩이를 혼자 씻기는 일이었다. 신생아의 여린 살갗과, 요로감염 위험. 흐르는 물에 조심히 씻겨야 한다는 압박. 하지만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뱃속에서도 움직임이 심해 초음파 선생님도 발가락을 못 세겠다며, 얘가 움직이는 것은 우리 병원 1등이라던 아이였다.

유명하다는 아기 비데도 써봤지만 사진 속처럼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은 우리 아이와 거리가 멀었다. 남편은 정 못하겠으면 물티슈로 닦아 주라고 했다. 본인이 퇴근하고 목욕시키겠다고. 그 말을 듣자 난 더욱 오기가 생겼다. 이건 아이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일이니 어떻게든 내가 꼭 해내겠노라고.

아이의 엉덩이를 닦아 주는 일이 이렇게 비장할 일인가..

나는 그렇게 온몸에 긴장이 꽉 들어찬 상태에서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무사히 첫 응가 씻기기를 해냈다.






사진: UnsplashBrittani Bu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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