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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으로 살면서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다시 찾고 있는 것들

by 소금라떼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비록 '역마살 낀 자유영혼'이라 불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성실했고, 열정적이었으며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엄마가 되어도, 일도 육아도 꽤나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단했다.

그렇게 복직 후 2년 9개월.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내가 얻은 것 : 다시 일할 수 있다는 확신


'아, 나도 다시 일할 수 있구나.'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감정이었다. 육아에만 집중한 2년은 분명히 소중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대로 내 커리어는 끝나는 걸까?' 하는 두려움도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래서 복직 제안을 받았을 때, '지금이 기회다, 더 늦으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상상을 하면 목이 메었고, '이 시기를 아이에게서 빼앗아도 되는 걸까' 자문하게 됐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나 2년 2개월 동안이나 아이에게만 집중했잖아' ,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다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복직 후 나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난 뒤, 업무와 육아의 경계는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다행히 육아 경험은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팀원들에게는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또한 마이너스 요소였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워킹맘 선배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내 이야기'로 듣게 됐다. 머리로만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미안했다. 그 미안함을, 함께 일하는 워킹맘 동료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갚아나가려 했다.




내가 잃은 것 : 몸과 마음의 건강


복직 후 4달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랫배가 아팠다.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며칠을 참고 일했지만 통증이 극심해졌다. 그리고 하혈이 시작됐다. 무서웠다. 결국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 갔다. 진단은 '난소의 혹'과 '자궁선근증 의심'. 호르몬제를 3개월 복용해 보고, 차도가 없으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비염과 위염은 달고 살았지만, 내 자궁은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노산의 임신에 걱정하던 내게 나의 담당 선생님은 20대만큼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불과 몇 달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결과를 쉽게 믿기 어려웠다. 결국 유명하다는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담당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적이 있었나요?"


몸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르몬제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약 복용 일주일 만에 두통과 구역감에 시달리다 못해 병원을 다시 찾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약이 가장 효과가 좋기 때문에 웬만하면 참아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중요한 개발이 진행 중이었지만, 나는 도무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원고를 쓰고 또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몸이 병들자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졌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나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퇴근길 버스에서 멀미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일단 광역버스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내릴 수가 없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자 사람들의 외투는 두터워졌고, 일터에서의 시름 때문이었을까? 버스의 공기는 탁해졌다. 입을 틀어막고 기도하듯 참았다. 도저히 참지 못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린 날에는 퇴근 시간만 2시간 반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했지만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지만, 업무를 리딩하고 있었기에 중간에 퇴사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만약 수술까지 하게 되면 어린아이를 두고 병원에 입원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커피를 끊었다. 변화해야만 했다. 식단을 바꾸고,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펴는 대신에 함께 잠을 자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3개월 후, 결과를 본 의사의 눈이 동그래졌고,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혹이 사라졌어요. 자궁선근증도 걱정할 단계는 아니네요. 이렇게 빠르게 회복된 환자는 처음이에요"


눈물이 났다. 내가, 내 몸을 지켜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다음 해 나는 공복혈당 위험 수치를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정상' 범위를 벗어난 것이 처음이었기에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의사는 1개월 후 재검을 했을 때 당뇨 판정을 받으면 평생을 관리하며 살아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또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카페인 중독, 야식, 운동 부족.. 내가 처한 모든 환경이 문제였다. 결국 고가의 PT까지 시작하면서야 겨우 수치를 낮출 수 있었다.


문제는 내 몸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 방식이었다.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병들고, 몸이 무너졌다.

위에서는 나를 밟고, 아래에서는 나를 향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아이에게도, 나는 낙제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삶을 내가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멈추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다시 퇴사를 결정했다.
이번엔 두려움보다 확신이 앞섰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내가 그렇게 외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바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동안은 그렇게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 순간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고, 도전하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할까? 나와 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까? 그 답을 찾고 있다.

내 나이 마흔을 넘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예정된 방향대로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게 될 내 삶에 변화가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지금, 내 인생에 '리셋'이 필요한 순간이다.









사진: UnsplashClay B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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