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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연장이 아닌,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삶이 필요해

초저출산 시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키울 수 없는' 사회

by 소금라떼


아이를 원치 않는 게 아니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환경이다




캡처.JPG 출처. EBS '인구 대기획 초저출생'


최근, 대한민국의 초저출산 문제는 국내는 물론 해외 석학들 사이에서도 큰 충격과 함께 회자되고 있다.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인 조앤 윌리엄스는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0.78명이라는 뉴스를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충격적인 반응이지만, 그럴 만도 하다.


이처럼 출산율이 여성 1인당 1.3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를 '초저출산'이라 부른다. 한국은 0.7명대를 4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한다. 단순히 인구 감소가 아닌, 사회 전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말 사람들이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일까?


실제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싶지만,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저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한 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vMUYg5l9-Q&t=281s


위 영상은 2024년 11월 21일에 방송된 <다큐멘터리 K 인구 대기획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일부이다.

집집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영상 속 풍경은 맞벌이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달 전, 아이와 함께 판교의 한 백화점에서 무료 음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엄마, 나 핫초코 먹어도 되지?"
"줄이 좀 긴데 기다릴 수 있겠어?"
"응!"


설레는 마음으로 달달한 핫초코를 기다리는 아이는 연신 재잘재잘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놨다.

그 모습이 귀여우셨는지 앞에 서 계셨던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뒤를 돌아보셨다.


"아이고~ 재잘재잘 말도 잘하네~ 얘 하나야?"
"아.. 네." (그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는 외로워~ 하나 더 낳아야지~ 얘! 엄마한테 동생 낳아달라고 해.


'하아...' 그놈의 '하나는 외로워 타령' 여기서도 또 시작이구나. 나한테 말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아이한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속으로는 '지금 애 하나 키우면서 직장 다니기도 힘든데 무슨 애를 또 낳으라고 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황을 정리하려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만하셨으면 좋았겠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요즘은 애 낳으면 나라에서 돈도 많이 주는 데 왜 안 낳아? 우리 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



할머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정말 큰일이라며 처음 보는 나에게 훈계하듯 잔소리를 이어가셨다. 이젠 뭐 놀랍지도 않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다. 태어난 지 100일이 되지도 않은 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시절부터 들었으니까.


물론 할머니 말씀처럼, 지금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정부지원이 과거보다 많아졌다. '라테'시절만 해도 서울시에서 10만 원가량의 육아용품을 지원해 주는 게 전부였으니까. 나 또한 지금 아이를 낳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 '돈' 때문에 아이를 낳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과거엔 지원이 없었다는 이유로 지금이 더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다. 시스템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할 수 없는 사회.


"연우 엄마, 우리 나나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알아보려고"
"나나 엄마, 초등학교 들어가고 보내. 어차피 줄넘기 배워야 해서 태권도는 보내야 하는데, 애들 학교 일찍 끝나서 학원으로 스케줄 짜서 뺑뺑이 돌려야 하거든."
"아.. 학원으로 뺑뺑이..."


그렇다.. 워킹맘이 가장 많이 일을 그만두는 시기, 바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이다.

영유아기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운영하니 어찌어찌 버텼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당장 점심도 먹기 전에 하교하기 때문이다.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소위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려 부모가 없는 그 시간을 채우게 된다. 아이들의 목에는 위치추적이 되는 휴대폰이 걸려 있고, 하원 시간 학교 앞에는 학원 차량이 줄줄이 서 있다.


그런 우려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 2025년부터 초등학교 돌봄을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확장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순간 내 안에서 욱! 하는 마음과 슬픔이 함께 터져 나왔다. "이러다 저녁밥도 학교에서 먹이겠네?"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씁쓸할 자조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을 스쳤다. 기사만 보면 반가운 소식처럼 보인다.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고, 학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계속 이렇게 아이와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아이를 학교에 아침부터 밤까지 맡겨야 하는 걸까?


단순히 '돌봄'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는 아이들의 정서와 건강에 대한 본직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와의 시간'이다. 정서적 안정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은 부모가 아이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고, 대신 남의 손에 맡기기를 요구한다.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싶다"는 소망이 너무 과한 걸까?


그저 한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부모로서 너무도 당연한 바람 아닐까?

월화수목금 9시부터 6시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일이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과 일이 단절된 환경은 마음도 육체도 지치게 만들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출산 장려금을 주고, 일회성 혜택을 늘린다 해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출산율은 결코 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lauren lulu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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