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명 출산율 시대, 육아는 여전히 개인의 몫인가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면 낮잠을 자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0~2세 영아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점심식사 후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 정도의 낮잠을 잔다. 하지만 아이는 돌이 지난 후부터 규칙적인 낮잠을 자지 않았다.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재우기 위한 루틴을 만들려고 참 많이 노력했지만, 낮동안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에게는 낮잠이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 덕분에 혼자 아이를 볼 때에는 저녁 8시에 잠들기 전까지 단 한순간도 쉬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밤잠은 규칙적이었고, 밤사이 깨지 않고 참 잘~ 잤다. (이앓이와 성장통이 있을 때만 빼고는.)
그런데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건 어린이집에 가면 다소 문제가 될 수 있다. 엄마인 나도 너무 피곤한 날에는 '제발 낮잠 좀 잤으면...'하고 바라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교사 1인당 영아 5명을(만 1세 반 기준) 돌보는 상황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는 교사의 업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어린이집 교사 : 아동 비율
- 만 0세: 교사 1명당 아동 3명
- 만 1세: 교사 1명당 아동 5명
- 만 2세: 교사 1명당 아동 7명
그렇다면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교사는 뭘 할까?
내가 알기로 그 시간에 선생님들은 알림장을 쓰고, 서류 업무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한다. 물론 잠자는 공간에 교사가 상주해야 하고, 쉬지 못한 채 서류와 뒤척이는 아이들을 동시에 돌봐야 하기도 한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시간에 교사들도 정말 충분히 쉬었으면 한다. 교사 1명당 만 1세 아이 5명이라니..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 나갈 때조차 '보조교사 없이 가능한 걸까?' 하는 불안함이 들곤 했다.
낮잠 이야기하다가 왜 이렇게 멀리 온 걸까?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중 일부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생한 경우도 있다. 다행히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혼자 남아 상처받지 않도록 언제나 세심하게 살펴봐 주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명확했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는 아이, 거기에 낮잠도 자지 않는 아이. 이 조합은 아이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깊은 고민 끝에 기관을 옮기기로 했다.
친구들도 좋아했고, 선생님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 괜히 아이만 힘들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컸다. 원장님께서는 내년에는 종일반 이용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그것 역시 확신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낮잠 문제도, 종일반도 어느 하나 뚜렷하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1년 더 이어가는 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 그 시기에, 입소 대기를 걸어두었던 단지 내 민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만 1세부터 5세까지 함께 생활하는 규모 있는 곳이라 기대가 되었다.
‘아이들이 많으니 종일반 친구도 있겠지.’
‘혹시 우리 아이처럼 낮잠을 자지 않는 친구도 있지 않을까?’
길 건너 시립 어린이집에는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전담 교사’도 있다고 들었기에, 왠지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그 기대는 아쉽게도 빗나갔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낮잠을 안 자는데, 그 시간엔 뭘 할 수 있나요?"
"그 시간엔 모두 자니까 누워 있거나 조용히 놀아야 해요."
..... 만 2세 아이가 눈만 꿈뻑꿈뻑 뜨고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잠자는 아이들 옆에서 소리 내지 않고 놀 수 있을까? 1년 반을 기다렸던 민간어린이집의 첫 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현실적으로 만 2세를 받아주는 기관은 어린이집 외에는 놀이학교뿐이다(만 2세부터 입학 가능한 영어유치원은 예외). 놀이학교는 어린이집과 달리 일과 중 낮잠 시간이 없다. 지역 맘카페를 통해 평이 좋은 곳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낮잠 시간이 없다는 조건은 충족됐지만, 대부분 놀이학교가 종일반을 운영하지 않아 보내는 게 불가능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오후 6시까지 돌봄이 가능한 놀이학교를 찾았다.
그날 전화로 내가 확인한 건 이 세 가지였다.
"새 학기에 만 2세 반 정원이 다 찼나요?"
"종일반은 몇 시까지 운영하나요?"
"만 2세 반에 등록한 아이 중 종일반 하는 아이들이 있나요?"
다행스럽게도 7명 정원의 만 2세 반 중 2명이 이미 종일반 등록을 마친 상태였고, 종일반에는 만 2세부터 만 5세까지 함께 있는 구조로,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종일반만 전담하는 선생님이 따로 계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안심이 되었다.
'아.. 여기서는 낮잠 시간에도, 종일반에서도 혼자 외롭지는 않겠구나...'
우리 부부는 상담 당일, 입학을 결정했다.
비용은 어린이집의 10배 이상. 어린이집의 원비는 월 약 10만 원, 정부 지원금 20만 원이 원으로 들어가니 총 약 30만 원 정도다. 놀이학교는 1년 원비, 교재비 등을 1/n 하니, 한 달 평균 150만 원. 정부 지원금 20만 원을 제하면 약 130만 원은 우리 부담이었다.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전일제 도우미의 경우 이보다 더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아이를 1:1로 맡기는 것보다, 기관에 오래 남아 있더라도 매일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낮잠'과 '종일반'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 만 2세 아이에게 1년에 1,800만 원의 사교육 비용을 지출했다.
비용이 아깝지 않았냐고?
종일반에 혼자 남아 외로워할 아이의 마음, 억지로 울며 잠드는 매일, 선생님의 휴식까지 방해하며 보내야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 비용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봐도, 당시 우리가 가진 선택지 중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물론, 놀이학교를 선택할 때 ‘종일 돌봄 여부’만 보지 않고, 원장님의 교육 철학이나 커리큘럼을 더 꼼꼼히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 경험을 통해 다시금 절감한 건, 결국 선택은 부모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선택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을까?
왜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위한 보육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교사 1명당 영아 비율은 적절한가?
왜 부모는 매번 비용과 불안을 감수하며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까?
2023년 보건복지부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교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영유아 수가 OECD 평균보다 많아, 보육교사들의 업무 과중과 소진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낮잠 시간은 실질적인 1:1 관리가 어려워 교사의 피로도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 피로와 스트레스는 결국 아이들에게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린이집 있으니 됐잖아’라는 식의 단순한 시선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육아의 현실은 훨씬 더 섬세하고 복잡하다.
영국 BBC 방송은 2024년 3월 28일 보도에서,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다”며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었다. 그들은 한국 정책 입안자들이 청년과 여성의 실제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여러 한국 여성들을 직접 인터뷰해 그 배경을 분석했다.
- 출처. 해외서도 놀란 韓 저출산… ‘사교육-독박육아의 나라’」 인용
2023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통계청은 2024년 잠정 수치가 이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숫자는 단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낳아도 키울 수 없다는 근본적인 불안이 반영된 결과다. 낮잠 시간 하나도, 결국은 이 거대한 구조 속 한 조각이다.
기관마다 제각기 다른 시스템, 교사들의 휴식권 보장 문제, 아이들의 수면 다양성, 그리고 부모의 선택지를 모두 함께 고려한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성향과 신체 리듬은 모두 다르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하나의 시스템에 모두를 끼워 맞추는 순간 아이도, 교사도, 부모도 모두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