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새 캐리어
나에게는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어릴 적 엄마는
"엄마는 너희 둘을 나란히 눕혀 놓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라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엄마는 너희들 잘 키운 것으로 부모로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해. 손주는 못 봐줘."
"당연하지~ 엄마도 엄마 삶이 있어야지. 나이 들어서 애 보면 몸 상해. 어린이집 종일반 보내거나 등하원 도우미 알아보면 되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를 낳기 전이었고,
엄마의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들렸다.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6살 조카와 5살인 내 아이를 위해 양쪽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셨다.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났다.
친정 부모님은
"다 늙어서 주말부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는 넋두리를 하셨고,
아빠는 "살림솜씨가 늘었다"며 웃으셨다.
웃프게도 양쪽에서 "엄마, 우리 집에 좀 와줘"라는 SOS가 동시에 울릴 때면
친정아빠는 오빠네로, 엄마는 우리 집으로 출동하실 준비를 하신다.
"아이고~ 둘 중 하나라도 좀 더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럼 왔다 갔다 하기라도 편하지"
힘에 부치는 엄마의 푸념.
처음에는 아빠도 함께 다니셨지만,
이젠 오랜 허리 통증으로 매주 이동하시는 것도 벅차다.
그 캐리어는 이제,
'이동 육아'를 하는 엄마의 삶을 상징하는 짐가방이 되었다.
엄마, 아빠도
분명 노년의 삶에 대한 꿈이 있으셨을 텐데...
은퇴 후엔 여행도 다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손 꼭 잡고 산책도 하면서 여유를 누리길 바라셨을 텐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늘어가는 부모님의 주름도 아프고,
내 아이의 눈물도 아려온다.
이런 우리 가족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등하원 도우미 고용해 보는 건 어때?"
"친정 엄마한테 용돈을 좀 더 드리고, 오빠네 가시지 말고 아예 나나만 전담으로 봐달라고 해~"
아이고..
엄마는 손주들을 봐주면서 보상을 바라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용돈을 드리면, 더 많은 돈을 아이에게 쓰신다.
장난감, 간식, 계절마다 바뀌는 옷들까지..
물론, 나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젠 엄마도 좀 쉬게 해드려야 하지 않나' 그런 마음이 왜 들지 않겠나..
그리고, 나 역시 숨 돌릴 틈이 너무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개입은 혼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우미분까지 추가되면 하원을 기다리는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은 만날 수 있을까?
그 불안감이 내 마음 한켠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예전, 놀이터에서 마주쳤던 장면이 떠오른다.
“김땡땡! 이모 말 안 들으면 이모 내일부터 안 올 거야!”
차갑고 거센 말투에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 아이의 엄마가 이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들도 많다.
다만, 우리 아이의 특성과 지금 내 상황에서는
내가 조금 더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