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주는 못 봐준다던 친정엄마

엄마의 새 캐리어

by 소금라떼


나에게는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어릴 적 엄마는

"엄마는 너희 둘을 나란히 눕혀 놓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어"라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손주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단호하셨다.


“엄마는 너희들 잘 키운 것으로 부모로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해. 손주는 못 봐줘."
"당연하지~ 엄마도 엄마 삶이 있어야지. 나이 들어서 애 보면 몸 상해. 어린이집 종일반 보내거나 등하원 도우미 알아보면 되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를 낳기 전이었고,
엄마의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들렸다.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6살 조카와 5살인 내 아이를 위해 양쪽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셨다.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났다.


친정 부모님은

"다 늙어서 주말부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는 넋두리를 하셨고,

아빠는 "살림솜씨가 늘었다"며 웃으셨다.

웃프게도 양쪽에서 "엄마, 우리 집에 좀 와줘"라는 SOS가 동시에 울릴 때면

친정아빠는 오빠네로, 엄마는 우리 집으로 출동하실 준비를 하신다.


"아이고~ 둘 중 하나라도 좀 더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럼 왔다 갔다 하기라도 편하지"


힘에 부치는 엄마의 푸념.

처음에는 아빠도 함께 다니셨지만,

이젠 오랜 허리 통증으로 매주 이동하시는 것도 벅차다.

결국, 엄마는 대중교통을 타고 오가셨고,

간편하게 짐을 넣을 수 있는 18인치 캐리어를 사셨다.

그 캐리어는 이제,

'이동 육아'를 하는 엄마의 삶을 상징하는 짐가방이 되었다.


엄마, 아빠도

분명 노년의 삶에 대한 꿈이 있으셨을 텐데...

은퇴 후엔 여행도 다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손 꼭 잡고 산책도 하면서 여유를 누리길 바라셨을 텐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늘어가는 부모님의 주름도 아프고,

내 아이의 눈물도 아려온다.




이런 우리 가족의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등하원 도우미 고용해 보는 건 어때?"
"친정 엄마한테 용돈을 좀 더 드리고, 오빠네 가시지 말고 아예 나나만 전담으로 봐달라고 해~"


아이고..

엄마는 손주들을 봐주면서 보상을 바라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용돈을 드리면, 더 많은 돈을 아이에게 쓰신다.

장난감, 간식, 계절마다 바뀌는 옷들까지..

물론, 나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젠 엄마도 좀 쉬게 해드려야 하지 않나' 그런 마음이 왜 들지 않겠나..

그리고, 나 역시 숨 돌릴 틈이 너무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개입은 혼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오늘은 엄마날이지?(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이지?)"

매일매일 확인하는 아이인데,

도우미분까지 추가되면 하원을 기다리는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은 만날 수 있을까?

그 불안감이 내 마음 한켠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예전, 놀이터에서 마주쳤던 장면이 떠오른다.

“김땡땡! 이모 말 안 들으면 이모 내일부터 안 올 거야!”

차갑고 거센 말투에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 아이의 엄마가 이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들도 많다.

다만, 우리 아이의 특성과 지금 내 상황에서는

내가 조금 더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진: Unsplashmy random photo



keyword
이전 09화등원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