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버티느라, 아이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 부부는 지하주차장이 없는 서울의 역세권 20평대 아파트에 살았다.
늘 복잡했지만,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여가를 보내기엔 딱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그렇게도 서울을 고집하던 남편의 마음이 달라졌다.
우리의 기준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좋은 환경'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우리는 친정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고,
강남에 있는 내 직장까지 출퇴근이 가능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와.. 삶의 질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선배 맘들이 왜 소아과가 가까워서 좋다는 말을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니 감기는 또 어찌나 자주 걸리는지.
이전 집에서는 소아과에 가려면 20분을 차를 타고 달려갔어야 했는데,
이사 온 곳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소아과도 여럿 있었고, 심지어 야간진료도 되어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가득했다.
서울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집 앞에서 강남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기에 출퇴근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곳곳에 보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놀이터.
단지 내에는 차가 다니지 않아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기에도 쾌적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딱 내가 복직하기 전, 아이가 두 돌이 되기까지였다.
정작 그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놀았던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퇴근길엔 설렘보다는
'버스 놓치면 안 돼.'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안 돼.'
라는 강박이 더 앞섰다.
그날도 나는 헐레벌떡 뛰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작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엔 온통 저녁 메뉴 생각뿐이었다.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이지?'
'반찬가게라도 들렀다 가야 하나?'
'그냥 시켜 먹고 같이 놀까?'
지금 가서 부지런히 준비해서 먹이면 7시, 씻기고, 책 읽어주고 9시에 재우기! 계획표처럼 짜인 하루를 살고 있는 나. 그때, 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엄마, 나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안돼~ 지금 밤 되려고 하잖아. 친구들 다 집에 갔어"
"으앙~~~ 나는 왜 놀이터에서 놀 수가 없어?"
아이는 엉엉, 참 서럽게도 울었다.
지금 당장 놀이공원을 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 앞 놀이터에 가고 싶다는 말이었을 뿐인데.
그날 아이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마음을 울음으로 쏟아냈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매일 '숙제하듯'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의 서럽고도 원망 섞인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졌다.
하루 종일 실내에서만 있어서 답답했을 아이는 당연히 뛰어놀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너무 지쳐서 그 당연한 마음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그때는..
그날 저녁, 우리는 집 앞 상가에 있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 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놀이터에 들러 실컷 뛰어놀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단지 안의 놀이터에서 작고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