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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

그날부터 아이는 엄마와의 하원을 거부했다.

by 소금라떼
지상최대의 과제는 어린이집 적응이었다.


다시 첫 출근이 결정된 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조차도 내게는 사치일만큼 내 마음은 분주해졌다. 나의 적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이다.

몇 년 전 회사에 입사했다가 2주일 만에 퇴사한 직원이 생각났다. 4살 아이를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입사했지만, 아이의 부적응 행동으로 인해 그녀는 입사 2주일 만에 퇴사를 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겨우 2주 만에 퇴사할 거면 왜 입사를 해서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다. 내가 잘 몰랐다고.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첫 번째 난관. 어린이집 입소

미디어에서는 저출산이라고, 해마다 아이들이 줄어 운영이 어려운 어린이집, 유치원이 폐원을 한다고 하지만 신도시로 이사와 보니 이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단지 내에는 가정어린이집 5개, 민간어린이집 1개가 있었고, 바로 길 건너에는 이 동네 엄마들이 모두 보내고 싶어 하는 시립어린이집이 있었다.

어린이집 대기 등록은 총 세 곳이 가능하다. 이때 순번이 중요한데, 그 순위는 맞벌이 여부, 자녀 수, 소득 등에 의해 결정이 된다. 시립어린이집은 자녀가 한 명 있는 가정에서는 몇 년의 대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부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에 희망을 걸어야만 했다.

나는 단지 내 민간어린이집과 가정어린이집 두 곳에 대기 등록을 해 두었으나 번번이 순번이 밀리곤 했다.

대기 1번까지 갔을 땐 정말 기대했지만, 며칠 후 갑자기 7번으로 밀려 있었다. 너무 허무했다.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묻고 싶었다. 엄청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번져 어린이집에 문의해 보았더니, 대기 등록 당시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맞벌이 1순위였으나 아이는 외동이기에 점수로는 200점이었다. 하지만 두 자녀, 세 자녀 가정의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록을 하면 내가 등록한 시점과 상관없이 해당 가정의 점수가 더 높기 때문에 순위가 밀린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의 기다림 끝에 단지에서 가장 작은 평수의 가정어린이집에서 연락을 받았다. 작은 공간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따듯한 느낌의 원장님을 뵙고 등록을 결정했다.


두 번째 난관. 낮잠

긴 기다림 끝에 어린이집에 등록을 했지만,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신생아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저녁 8시에 잠들고,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밤새 깨지 않고 잘 자는 아이였기에 내가 전업주부로 남아 있을 때에는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밤새 잘 자니 나는 육퇴 후 생활을 즐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건 정말 큰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맞춰 집에서 억지로라도 재울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켜달라고 하셨지만 소용없었다. 혹시 낮잠 이불이 불편한 걸까 싶어 백화점에서 제법 고가의 세트를 사봤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는 끝내 낮잠 시간에도 잠들지 못했다. 아이들이 낮잠 자는 시간 동안 선생님은 알림장도 쓰시고, 여러 업무를 하셔야 할 텐데 내 아이만 자지 않으면 거실에 나가 선생님과 단 둘이 놀이를 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큰 소리도 내면 안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를 오전에만 등원시킨 후, 오후 낮잠시간 전에 데리고 왔었다. 당시 적응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내가 출근을 해야 한다. 디데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근무시간을 조정해서 9-6 근무는 아니었지만,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일찍 퇴근을 해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오후 5시가 넘어 도착을 했다. 낮잠도 자지 않는 아이를 5시 이후까지 맡기는 것도 모자라, 아이가 다니는 가정어린이집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3시 40분이면 하원을 했기에 아이는 친구들이 모두 하원한 후 2시간 동안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어린이집에 갈 수 있었더라면 그나마 같이 있을 수 있는 언니, 오빠, 동생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다니는 가정어린이집도 겨우 순번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의 출근과 동시에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일찍 하원하는 아이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생각보다 그 후유증은 컸다.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벨이 울릴 때마다 뛰어나와 자신의 엄마, 아빠가 아님을 확인했고, 그 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아이가 다른 친구들의 신발을 신발장에 꺼내어 주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또래보다 생일이 빨랐던 아이는 친구가 하원할 때 신발을 찾지 못하거나 신발을 잘 신지 못하면 신겨주곤 했다는 것이다. 아이 친구의 엄마는 귀엽다고 웃으며 들려준 이야기였지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다 실망하고, 다른 아이의 신발을 꺼내줬다고?'

또한 낮잠을 자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선생님께서도 재우려고 노력하시다 보니 아이가 울다가 잠들거나, 선생님의 배에서 잠드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는 몸이 안 좋을 때 내 배 위에서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힘겹게 아이를 재우는 선생님께도 죄송하고, 울면서 잠들었다니 속이 아려왔다. 처음에는 적응하면 괜찮겠지.. 했지만 하루하루 홀로 남아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이게 맞는 걸까?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남편은 등원을 좀 더 맡아했고, 하원은 내가 주 3일을 맡았다. 내가 하원을 담당하는 날이면 모니터 속 시계를 보며 5분 전에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퇴근시간이 땡! 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빨리 데리러 가기 위해 헐레벌떡 버스를 잡아 탔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핸드백을 크로스로 매고는 달릴 준비를 했다. 그렇게 또 버스에서 내리면 남은 힘을 짜내어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띵동~ 소리가 들리자 선생님의 목소리와 아이의 후다닥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나야~ 엄마 오셨다"

후다다닥 나온 아이는 엄마를 확인하고는 이내 다시 들어가 버린다. 이게 무슨 일일까.. 잘 못 들었나 싶어 아이를 불러본다.

"나나야~ 엄마야, 엄마 왔어~"

하지만 아이는 반응이 없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엄마와 함께 집에 가는 걸 거부하기 시작했다.

"엄마 가!"

내 품에서 벗어나며 울부짖었다. 나를 두고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작은 온몸으로 나를 밀어냈다.

엄마의 부재를 몸으로 견디고, 낯선 낮잠과 시간과 홀로 남은 오후를 통과한 아이.

그 모든 시간을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사진: UnsplashMarkus Spi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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