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향기가 머무는 곳, 은평
은평에는 오래된 기와지붕 아래서 바람이 쉬어가는 소리가 있습니다.
진관사로 오르는 길목에 서면, 산에서 내려온 공기가 손끝을 스치듯 지나가고, 천년의 시간 속에서도 이곳의 글과 말, 소리와 향은 여전히 한글처럼 단정하고 다정합니다.
저는 진관동을 ‘한문화의 온도’로 기억합니다.
어디서도 보이는 북한산. 고즈넉한 절 마당에 앉으면, 한지에 붓끝을 대며 한글을 연구했던 조선의 마음이 아직 이 언덕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은평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아마도 그 고요함이 주는 깊이에 있을 것입니다.
은평구청이 개발한 ‘은평사가독서체’, ‘국립한국문학관 개관(2027년)’은 단순한 문화 사업이 아닙니다.
이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쓰는 시작입니다.
은평은 ‘한글을 쓰는 사람들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문장을 찾아가고, 어르신들이 손끝으로 한글을 그리며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곳 — 그것이 제가 꿈꾸는 은평의 미래입니다.
서울의 서쪽 끝, 그러나 세계로 향한 첫 문이 될 곳.
진관사 앞마당에서 한글의 곡선을 느끼고, 갈현동의 공방 골목에서 글씨의 숨을 배우며, 문학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낭독하는 그런 하루들.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일도, 말을 건네는 일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도 모두 하나의 ‘문화 체험’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 골목의 간판 하나까지 한글로 살아 움직이는 마을 — 그게 바로 내가 믿는 은평의 이야기입니다.
2027년, 국립한국문학관이 은평에 불을 밝히는 날,
서울의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한글의 마음’을 배워가길 바랍니다.
진관의 산길에서, 은평의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쓴 첫 문장이 또 하나의 빛이 되어 흘러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