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 서울 여자들의 시간

by just Savinna

3.8 여성의 날, 서울 여자들의 시간


서울에 살면서 저는 자주, 이 도시의 시간이 여자에게는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은 그래서 제게 ‘기념일’이라기보다, 이 도시의 여자들을 다시 떠올리는 날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실과 상담실, 그리고 골목의 작은 모임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왜 항상 내가 더 조심해야 하죠?”, “꿈을 말하면 꼭 먼저 결혼 계획을 물어봐요.”, “아이를 키우는 일과 일을 계속하는 일 사이에서 늘 죄책감이 생겨요.”, "남자들은 왜 도와준다고 하죠? 자기 일인데?", "여자의 적은 여자예요."...

이 말들 속에는 거창한 이론 대신, 각자 하루를 버티며 쌓아 올린 작은 분노와 애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담겨 있습니다.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여자가, 게다가 지방 정치에?’라는 말을 앞에서, 또 뒤에서 듣게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진지하게 답변을 적어 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발을 들여놓고 싶었던 이유는, 의회라는 공간이 여전히 너무 많은 여성들에게는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월 8일은 위대한 몇몇 여성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날이 아니라, 아직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많은 여자들의 시간으로 채워진 날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날이 궁극적으로는 ‘여성만의 날’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자기 몫의 책임을 돌아보는 날, 서로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는 결국 남성도 더 자유로워지는 사회이고, 돌봄과 생계를 함께 나누는 구조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모두를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게 3.8 여성의 날은 곧 남성의 날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서로를 다시 바라보자는, 작은 휴머니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여자들이 자기 속도와 자기 목소리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 사랑하고 일하고 쉬는 일이 특별한 용기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는 도시.

3.8 여성의 날을 맞아, 저는 그 시간을 향해 한 발 더 내딛겠다고, 이 짧은 글 위에 다시 적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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