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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 Aug 28. 2023

해가 지고 맞이한 황금기

NCT 완전체 콘서트가 증명한 것

고백하자면 난 케이팝의 열렬한 지지자다. 15살 때부터 이 세계에 몸을 푹 담가온 나는 관객과 팬이라는 역할을 아주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덕질을 너무 즐긴다는 이유로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없기도 하다. 돈벌이에 착취되는 아이돌들에게 돈을 쓰며 말도 안 되는 권리를 주장할지도 모르고, 화려한 이미지가 배설하는 악습과 억압들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오랜 시간 아이돌 산업의 울타리 안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나의 감정이 이 이익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세뇌당하고 선동당한 결과라 해도,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의 감정까지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입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난 적어도 음악과 무대는 거짓이나 허상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반면에 가수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특별한 감정이 읽히지 않으면 그 확신은 더 이어지지 않는다.


난 여태 쉬지 않고 다양한 덕질을 했지만, 한 대상을 연속으로 4년 이상 좋아해 본 적은 없다. 이 글의 주인공이 될 NCT에는 2020년에 입덕했으니, 내년이 이번 덕질의 향방을 가를 기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 안 남은 시간 안에 나는 이 팀을 계속 좋아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난 2020년 말에 오로지 온라인에서만 중계되었다가 올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열린 NCT 완전체 콘서트에서 그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공연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니, 차라리 최대한 편파적으로 써보겠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시도한 엔시티라는 이름의 실험은 그동안 참 다사다난했다. 처음에는 ‘무한확장’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각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팀들(NCT 127, WayV)과 청소년 연합팀(NCT DREAM)을 만들어 일명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곡마다 어울리는 멤버들을 선정해 새로운 조합으로 선보이는 NCT U를 함께 런칭함으로써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실현하기 어려울 법한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출발은 좋았으나 여러 팀에 동시에 소속되어 다른 멤버들보다 몇 배의 활동량을 소화해야 한다거나 청소년 연합팀에 적용한 졸업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점, 고정된 팀인데도 멤버 변동이 지나치게 많았던 점 등이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새 보이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몇몇 멤버들이 탈퇴했고, 일본 현지화 팀인 엔시티 도쿄(가칭)로 데뷔하기 위해 영입될 멤버들을 끝으로 일단은 마지막 정비를 마친 상태다.


‘무한’은 사실 불안한 개념이다. 인류가 몹시 선망하지만, 막상 가졌을 땐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불안해한다. 우리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를 생각만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 그룹의 더 크고 더 이른 성공의 발목을 잡은 건 바로 ‘무한확장’이라는 콘셉트 때문이다. 모든 멤버들의 고르고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하지 못하고, 잦은 멤버 변동으로 인해 팀워크가 무너질 수 있다. 또 기본적으로 로테이션 시스템을 표방하기 때문에 멤버 교체를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고갈되지 않는 자원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만 한다. 지금은 개별 팀들이 각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체제까지 성공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 이름을 따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이수만의 야심 찬 기획은 결국 좋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sm은 파격적인 시도인 동시에 혁신의 실패로도 보이는 무한확장의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더 이상 ‘끊임없는 공급’에 기댈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각 멤버들의 능력과 가능성에 기생하는 구조로 변모했다. 실로 이 말도 안 되는 팀을 이끌어가는 건 멤버들의 역량이다. 팀은 유지하되 멤버들만 부품처럼 갈아 끼우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체제의 폐해에만 집중하면 그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은 아마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멤버들의 개성과 매력이 자신들이 부품처럼 취급되는 상황까지도 뒤집어버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어떤 난해한 곡에서도 흔들림 없이 빛을 발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팀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뚜렷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개별 유닛들의 서사는 잠시 제외하도록 하자). 일단 보통의 아이돌 그룹에 비해 멤버 수가 많고, 조합은 자주 바뀌며 곡의 콘셉트도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얼마나 더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는지가 이 그룹을 지탱해주는 핵심 기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Neo Culture Technology’라는 팀명은 앞서나가겠다는 단 하나의 사명만을 안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내 생각에 엔시티는 매너리즘을 찾아볼 수 없는 그룹이다. 엔시티라는 브랜드가 출범한 지 벌써 8년째지만, 오프라인으로 하는 완전체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돌 세계에서 이 정도 기간이면 ‘많이 활동했다’, ‘이젠 진부하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엔시티는 긴 연차만큼 한껏 무르익은 실력을 바탕으로 언제나 새롭고 예상을 뛰어넘고 아직도 시도할 게 남았나 싶을 정도로 다채로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 같은 팬들은 황홀하면서도 때로는 정신없이 그들이 터준 길을 뒤따라 간다. 이것이 내가 엔시티를 좋아하는 이유다.


콘서트 얘기를 한다면서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다. 여기에 4시간이 넘는 대장정을 전부 다 나열할 수는 없으니 기억에 남는 무대만 언급하겠다. 쟈니, 태용, 재현, 마크, 샤오쥔, 헨드리, 해찬이 참여한 NCT U의 ‘PADO’는 재즈와 힙합의 결합을 제대로 보여준다. 내가 음악을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엔시티의 음악 안에서 나오길 원했던 장르와 분위기다. “you got me confused, you got me so satisfied”라는 가사처럼 여유롭게 넘실대는 파도와 빠르게 휘몰아치는 파도 사이에서 어떤 리듬을 타야 할지 혼란스럽다가도, 이내 그런 계산적인 생각들은 던져버리고 파란 무아지경 속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혼란이 이상하게 날 만족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나는 과연 음악이 주는 전율을 벗어나 살 수 있을까?


음악은 반복의 미학이다. 3분 남짓한 시간 안에서도 한 가지 구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고, 다시 재생하고 싶은 순간을 언제든 불러와 감정을 재현한다. 그리고 엔시티의 경우에는 예전에 선보였던 멤버 조합의 귀환이 그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말할 수 있다. 7년 만에 엔시티의 데뷔곡이자 건국 신화로도 불리는 ‘일곱 번째 감각’의 멤버들이 ‘Baggy Jeans’라는 새로운 곡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음악으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곤 하는데, 워낙 이전 곡이 획기적이고 상징적인 데다가 똑같은 조합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난 비슷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그동안 멤버들의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을지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추측을 간단히 깨부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힙하게 바지춤을 털었다. 본 적 없는 제스처와 세련되고 미니멀한 비트의 향연 위에 “baby you ain’t know what is in my pocket”이라는 가사가 덧씌워졌을 때, 엔시티의 다음 행보는 언제나 미궁일 것이고 어떠한 상상도 불가능할 것이라 직감했다.


올해는 엔시티가 조금 더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 해다. NCT U를 활용한 완전체 앨범과 더불어 솔로, 엔시티랩, 새로운 유닛 등 필연적인 시스템의 한계 안에서 또 다른 도약을 꿈꾼다. 그렇게 더운 날씨와 뜨거운 조명, 폭발적인 가창력과 과격한 춤이 그들의 체력의 한계를 시험했음에도 수많은 곡들 중에 고르고 골라 꽉 찬 공연을 선보인 엔시티의 축제는 해가 질 무렵 시작해서 완전히 해가 진 뒤 끝이 났다. 인천 문학경기장을 채운 초록빛 물결에 둘러싸여 있었던 20명의 엔시티 멤버들은 다 같이 NCT 2023 앨범의 타이틀곡인 ‘Golden Age’를 부르며 진정한 황금기를 맞았다. 마지막까지 끓는 그들의 열정과 더 짙어진 팬들의 애정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콘서트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공연 당일과 같은 농도의 여운이 지속되고 있다. 만약 이 그룹을 향한 기대감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면 일찍 잠들지 말고 기다리자. 황금기를 맞은 엔시티의 새로운 밤이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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