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운 Aug 21. 2023

딜레마는 오로지 선지자의 몫인가?

황무지 위의 오펜하이머 들여다보기

난 보여주는 걸 보지 않고 보라는 대로 보지 않는 청개구리 관객이다. 광복절 아침 해가 밝자마자 마주한 원자 폭탄의 아버지에 관한 전기 영화는 기대했던 통쾌함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땅과 조상을 식민지배했던 어떤 국가에 가하는 응징은 거기에 없다. 대신 불편하고 공허한 물음이 남는다. 놀란은 윤리의 문제를 관객에게까지 넘기며 영화가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내내 로스앨러모스에 함께 있으면서 모든 과정을 지켜봐 온 당신은 이 폭탄이 일으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평화를 만드는 궁극의 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홀로 읊조린다. “샨티 샨티 샨티(‘평화’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그런데 t.s. 엘리엇은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이 아니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영화의 극 초반에, 그리고 그만큼 긴 오펜하이머 생애의 초기에 허공에 떠다니는 원자들과 피카소의 그림, 유리잔을 벽에 던져 깨뜨리는 장면과 함께 잠깐 스쳐 갔던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오펜하이머의 세계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한발 다가서게 해 준다. 그리고 시집의 제목이 노출된 화면은 인물과 문학 작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숨어 있을 거라는 암시를 나타낸다. 사실 그런 심오한 해석을 뒤로하고도 놀란이 묘사한 오펜하이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시를 읽어야겠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겼다.


우선 둘 사이에 아주 표면적인 연결고리부터 추적하자면, 1963년에 오펜하이머는 크리스천 센추리 잡지로부터 어떤 책이 그의 직업적 태도와 삶에 대한 철학을 형성했는지 묻는 질문에 10권의 책을 언급했다. 그중 하나가 <황무지>다. 1922년 봄에는 야외 경험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황무지 그 자체인 뉴멕시코주로 가서 야영을 하고 말을 탔다.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어 그가 뉴멕시코를 평생의 사랑으로 삼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는 t.s. 엘리엇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인의 무력감을 노래한 시 <황무지>를 발표했다. 문학계에서 모더니즘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이 ‘새로운 시’는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예언과 서로 교차한다.


엘리엇의 우울하고 난해한 시는 한낮 태양의 빛과 열기, 그리고 음식이 주는 흡족함과 식곤증이 다 꺼진 토요일 밤이 되어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장에 걸쳐 길게 전개되는 <황무지>는 황폐함과 무의미함, 저속함을 낭만주의적인 기색 없이 보여준다. 희망도 해결책도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바로잡아 볼까” 하며 근근이 버티는 화자처럼 이 책을 읽고 있었던 캠브리지 유학 시절의 오펜하이머가 과연 무력감만을 학습했을까? 아니다, 오펜하이머는 부활을 노렸다. 그는 아직 이론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활발하지 않았던 미국으로 돌아간 뒤 원자 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지휘자가 되자 ‘내 땅’을 벗어나 더 넓은 황무지에 천둥이 치고 마침내 단비가 내릴 미래를 꿈꿨다. 어쩌면 그때 오펜하이머도 엘리엇을 따라 읊조렸을지 모른다. ‘샨티 샨티 샨티.’


하지만 미래는 그렇게 간단히 흘러가지 않았다. 과학이 도구가 되면 과학자도 도구가 된다. 오펜하이머가 죽은 지 55년 후이자 그에 대한 보안 승인이 거부당한 지 68년 후인 2022년에야 그의 조국은 당시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 혹은 소련의 스파이인지 밝혀내기 위해 이른바 사상을 검증했던 청문회의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점과 그의 애국심을 인정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며 그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꽉 쥐었던 손에 남은 고통이 점차 흐릿해지고 마지막에 남은 건 ‘애국은 무엇일까?’다. 누가 애국심을 결정할 자격을 지닐까? 또 그 기준은 무엇일까? 적국의 민간인들을 희생시켜 조국의 민간인들을 지키는 것이 애국일까? 아니면 가해 국가라는 낙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애국일까?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 속의 불평등한 질서라도 지키려 애쓰는 게 애국일까? 사상 검증은 왜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고 양방향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만약 오펜하이머의 가족, 동료, 지인들 중 누구도 제대로 증언하지 못해 그가 아주 큰 오해를 샀더라면 그의 죽음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누가 그를 심판할 충분한 자격을 지닐까? 도대체 그게 누구일까?


난 오펜하이머가 자기 나라를 사랑했음을 안다. 유대인이었지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던 그가 나치와 소련에 대항해 평화를 이룰 방법을 모색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보며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애국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황무지로 돌아오는 것,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넓은 황무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t.s. 엘리엇은 자신의 시에서 부활의 가능성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아마 한 차례의 큰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그런 희망의 의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쟁으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 이제는 역사책에서만 그때의 충격을 읽을 수 있는 지금, 난 엘리엇이 직접 했던 말을 새로운 행으로 덧붙이고 싶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시작한 곳에 도착해 그 장소를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딜레마의 끝이 절망일지라도, 거기서 우리는 다시 끝없는 논쟁의 출발점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