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이야기, 영화 <러브레터> 리뷰, 해석
영화 <러브레터>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담긴 영화 리뷰와 해석입니다.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어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포스터 - 공식 이미지)
겨울바다에 다녀왔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요새는 줄곧 죽음과 삶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실감이 나서...
겨울바다와 닮아 있다.
살을 에는 비릿한 바람이 불어도
포근함이 파도쳐 오는 게
꼭 삶 같기도, 죽음 같기도 하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도무지가 감당이 불가하니까.
삶이 주어지는 것은 항상 기적일까?
그런 답 없는 질문을 하면서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러브레터>를 보았다.
처음 보는 영화인데도 너무 잘 아는 대사,
오겡끼데스까-!
ㅎㅎㅎ
일본어를 잘 몰라도 이 말은 다들 잘 알지 않을까. 대단해. 대답해주고 싶네, 겡끼데스!! 헤헷...
제목부터 사랑의 편지라니, 설레는 로맨스 영화일까? 하며 펼쳐본 영화는 사랑하는 이야기기보다 이별하는 이야기였다.
영화 <러브레터> 리뷰 고고고
- 이별 못한 이별의 여정
영화 <러브레터>는 2년 전에 죽어버린 후지이 이츠키의 기일로 시작된다.
그의 연인이었던, 아니 아직까지 연인인 와타나베 히로코
그녀는 이츠키의 어머니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에 갔다가 우연히 그의 중학생 시절 앨범에서 그가 예전에 살았던 곳의 주소를 알아내게 된다. 오래전에 그 주소지는 도로로 바뀌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히로코는 그 없어져버린 주소로, 죽어버린 연인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웬걸, 죽은 이에게서 답장이 오고야 만다.
- 잘 지내세요?
물었던 편지에,
- 잘 지냅니다.
라는 답장이...
영화 <러브레터>는 죽은 연인에게 쓴 편지에 답장이 오면서부터 시작되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전개된다. 그러니까 영화는 죽은 연인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한 여자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오죽하면 죽은 이에게, 이젠 있지도 않다는 주소로 편지를 썼을까. 얼마나 묻고 싶었을까. 그저 잘 지내는지, 그 질문 하나가 얼마나 사무쳤을까.
죽은 이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상실에 대한 애도의 몸부림이다. 답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속에 쌓인 말들을 게워내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거다. 앞으로를 살아갈 수가 없는 거다. 상실의 자욱은 그토록 깊다. 살아있는 그 누구도 상실의 구멍을 메워줄 수가 없다.
히로코 옆에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던 선배가 있지만 그의 어떤 노력도, 마음도 그 구멍에 들어맞지가 않는다. 잃어버린 조각은 오직 잃어버린 그 조각으로만 채울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매정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의 표정을 참 오래도록 쓸쓸하게 바꿔버린다.
그런데 답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보낸 편지에 덜컥 답이 오다니, 죽은 연인으로부터 답장이 온 순간부터 영화는 필연적으로 아직 못다 한 이별로부터 이별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야기이기보다 이별하는 이야기이다.
- 더 들려주세요.
알고 보니 죽은 연인 이츠키와 동명이인이 있었던 것. 히로코는 이름이 같은 여자 이츠키의 주소로 편지를 썼던 것이다. 히로코는 여자 이츠키에게 편지를 하며, 죽은 연인 이츠키의 학창 시절 모습에 대하여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두 여자는 죽은 이츠키를 매개로 하여 편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영화는 살아있는 이츠키가 들려주는 죽어버린 이츠키의 중학생 시절 모습을 보여준다. 히로코는 자신은 만나 볼 수 없을 그의 학창 시절을 전해 들으며 위안을 삼는 것 같다.
이별에는 미래가 없다. 히로코는 그와 결혼 약속도 하며 함께할 미래를 그렸겠지만, 도적처럼 이미 와버린 죽음 앞에 그 모든 약속들은 의미를 잃고 공중으로 흩어져버렸다.
이제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죽어버린 이츠키의 오래전 빈칸을 살아있는 이츠키의 편지를 통해 채워가는 것뿐이다. 죽음에는 미래가 없다. 그저 돌아서면 날아갈 과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직 이별 중인 히로코는 그 마저도 소중해서 살아있는 이츠키에게 중학생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자꾸만 부탁한다. 죽은 그와의 미래는 더 이상 그릴 수 없기에, 내가 몰랐던 그의 과거를 그려넣길 원한다.
히로코는 이츠키(여자)와 자신이 아주 닮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첫사랑과 닮아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라면 그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 내가 그의 첫사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가 나를 사랑했다면... 그건 배신감이 들만한 일이겠지. 그런 히로코를 보고 있으면 이 여자, 아직 이별하기엔 멀었구나. 싶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안녕이란 게, 그게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뚝딱 되면 좋으련만.
세상에 없는 이의 마음을 두고 배신감이나 질투를 느낀다는 것이, 아직 그녀에겐 죽은 그의 연인이 살아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 그렇겠구나, 싶어 참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 그녀에겐 아직 더 보낼 편지가 남아있다. 아직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를 보내주기 위해선.
(살아있는 후지이 이츠키의 학창 시절 모습. 아고고 예쁘다. 풋풋하다.)
- 죽음은 도처에.
영화 <러브레터>가 매력적인 점은 죽은 연인의 동명이인인 살아 있는 이츠키가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히로코와 똑같이 생겼다는 데에 있다.
(보면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아본 장면의 스틸컷.)
설정상으로 두 사람은 매우 닮은 사람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했다고 한다. 살고 있는 동네나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컷이 바뀔 때마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어렵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약간의 멘붕이ㅎㅎㅎ.
뭐지? 어디서 저렇게 닮은 사람 두 명을 데려다 놨지? 아니, 그전에 후지이 이츠키는 죽은 남자 이름 아닌가? 왜 저 사람이 이츠키라는 거지? 뭐지? 얼굴은 그 여자 얼굴인데 이름은 왜 죽은 사람 이름이지?
뭐지??? 과거의 나 자신인가? 타임리프 물인가? 하는.... 멘붕 대환장파티를 내적으로 겪다가 조금 후에 영화의 설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왜, 살아있는 후지이 이츠키에게 몸이 쇠약하다는 설정이 부가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뭐 전형적인 첫사랑 이미지라서 씩씩하지만 몸이 쇠약한... 그런 진부하고 구시대적인 설정을 붙이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보면서 내 나름의 답을 내려보았다.
영화 속 살아있는 후지이 이츠키는 감기를 달고 산다. 기관지가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알고 보니 그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폐렴이 심해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라고 가라고, 그녀의 엄마는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이츠키는 도통 병원엘 가지 않는다. 무슨 말 안 듣는 꾸러기처럼.
그러다가 엄마에게 속아 강제로 병원에 가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이츠키는 몇 년 전 급하게 병원에 실려온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한다.
마치 트라우마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듯이 선명하게 병원 복도 앞으로 그날의 위급했던 상황이 재현된다. 그렇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제 이츠키가 그런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아버지처럼 기관지가 약하고 자꾸만 기침을 하고, 까딱하면 아프다. 어쩌면 그녀가 병원에 오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 자신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츠키는 죽음을 이고 살지 않았을까.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의 삶에 드리웠을 것이다. 사람이 언제든 정해진 운명처럼 허무하게, 당연하게 숨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를 것 없이 몸이 아픈 그녀에게 죽음은 더욱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츠키는 죽음의 시선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알고 봤더니 2년 전에 죽었다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후지이 이츠키(남자)의 소식은 더 황망하다. 젊음을 기록하듯 산에 올랐던 후지이 이츠키는 예기치 못하게 죽고야 만다. 반면 죽음을 이고 살았던 후지이 이츠키는 끝내 살아남는다.
죽음은 도처에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영화 같지만,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게 된다. 사실은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영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누군가의 첫사랑과 그의 끝사랑, 풋풋한 마음과 서러운 이별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론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남은 사람들의 추억과 애도의 과정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영화 <러브레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남 얘기 건너다보듯 할 수가 없어진다. 우리 도처에 삶과 죽음이 있고 사랑과 이별이 있기에.
- 겡끼데스
그래서 히로코는 그와 이별하게 되는가.
히로코는 살아있는 이츠키와 편지를 하며, 그의 죽은 연인이 살아있는 이츠키를 좋아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편지를 모두 이츠키에게 돌려보낸다. '이 추억들은 모두 당신 거예요.' 라며.
이츠키가 들려준 죽은 연인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는, 이츠키를 사랑했던 한 소년의 소중한 추억의 일부이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츠키니까.
그리고 그렇게 편지를 돌려줄 수 있게 된 것은 이젠 배신감이나 질투가 아니라 그의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을 과거의 한 페이지에 남겨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제는 마주 볼 수 없었던 그가 죽은 그 산을 바라보며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돌아오지 않을 편지로 오겡기데스까, 묻는 게 아니라 그가 떠난 그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오겡끼데스까. (お元気ですか)
오겡끼데스까! (お元気ですか!)
그래서 그녀는 그를 보내주었을까.
편지도 돌려주게 되었고, 그의 죽음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섣불리 그를 보내줬다고 결론 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 <러브레터>는 상실과 애도의 여정이다. 애도는 시간이 약이기도 하지만, 약이 아니기도 하니까. 그녀가 그를 온전히 보내주지 못한다 해도, 그래서 자꾸만 가슴이 아프다 해도 어쩌겠는가. 삶이란 게 그렇게 아픔을 품고도 가야만 하는 것이니.
다 잊을 수 있다기보다, 온전히 보내줄 수 있다기보다, 그저 잘 지낼 수나 있어질 것이다. 누군가와, 무언가와 영영 이별해버린 사람에게는 사실 그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 하고 묻는 히로코의 질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츠키가 와타시와 겡끼데스(元気です。), 하고 답을 하듯이 편집하여 보여준다.
하여튼 살아있다면 답할 수가 있다. 잘 지내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된다.
나는 후지이 이츠키가 사랑했던 두 여자, 히로코와 이츠키가 모두 잘 지냈으면(元気に過ごしていたら) 하고 마음 깊이 바라게 된다. 애써 잘 살아가기를.
영화 <러브레터> 리뷰 끝.
겨우 한 번 봤다. 내 생각에 한 세 번 보면 전혀 다른 리뷰가 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뒤에나 다시 쓰게 되겠지? 궁금해지네.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될지.
확실히, 자꾸 왜 사는가 질문하는 시절에 이런 영화를 보니까 영화 속 죽음과 삶에 더 눈이 갔던 것 같다. 멜로 영환데도 말이다. 써놓고 보니 왜케 퍽퍽하냐 나...... (다음엔 좀 더 가볍고 설레는 걸 억지로라도 봐야 하나...)
중학생 때나 하고 말 질문일 줄 알았는데, 서른이 되어도 왜 사는지 묻는 내가 참... 중2 사춘기인가 싶다가도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마흔 돼도, 쉰 돼도 이 질문하고 있을 것 같다. ㅋㅋㅋㅋ .. 그런가요? 아닌가요? 저만 이런가요? ㅎㅎㅎㅎ
어쨌거나 그냥 사는 거다.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언젠가 심어둔 '이츠키 나무'처럼 생은 그저 툭 던져져서, 잠깐 잊힌 채로 꿋꿋이 자라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제법 큰 나무가 되어서 단단히 살아있는 것... 무수한 가지를 가진 채로 스러질 듯 흔들리더라도 단단하게.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생각났다. 지독하게 이별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지독하게 이별하는 노래가 생각이 났나 보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이소라 - 바람이 분다)
물론, 이 영화의 OST 자체도 참 좋다. 아주 유명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리워하는 것보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남겨지기보다 떠나간 사람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은 그래서, 삶보다 죽음이 궁금해지는 날이 있다.
나도, 잘 지내요- 하고 묻고 답하기보다 묵묵부답의 산이 되고 싶을 때가 가끔은... 아주 아주 가끔은 있다. 이별은 그만큼 아픔인가 보다.
오늘 밤엔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다정한 마음을 담아서. 그래도 죽음보단 삶이 더 궁금해지도록.
영화 <러브레터> OST - A Winter Story
이소라 -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