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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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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Feb 22. 2022

우린 말이 필요해

고양이는 말해, 눈으로


괜찮아, 정말이야. 잘하고 있어. 라는 말.


이런 말들이 듣고 싶었던 거야. 솔직해질게. 꽤 오래되었어, 이런 말들이 나에게 절실해진 거 말이야. 스스로 확인이 잘 안 됐거든. 너무 많은 것을 나에게 맡겨야만 했어. 어른은 다 이런 거야? 수많은 선택의 연속과 선택이 가져온 결과들, 따라오는 책임과 해석까지. 모든 과정이 다 나 스스로에게 달렸더라고. '괜찮아, 정말이야. 잘하고 있어.' 하고 말하기까지 너무 많은 검증의 시간이 걸린다는 건 나에 대한 신뢰의 부족인 걸까? 이게 바로, 사람들은 요즘 자주 쓰는 말로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인 걸까?


나 실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그러면서 나의 많은 과거들을 헤집어야 했고, 다른 이들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말소리와 문장, 단어들 사이에서 진짜 표정을 살피는 훈련도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나는 소위 말하는 '자존감의 문제'를 여전히 겪는 걸까? 나만큼이나 내 마음과 감정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나 싶을 만큼, 그만큼 나 열심히 날 돌아봤고 돌봤는데 말이야.


이런 고민들을 하면 할수록 '결국 힘들다는 거 아닌가', 하는 간단한 말로 정리가 되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꼭 짝꿍처럼 '내가 나약해서 그렇다'는 자책 어린 생각도 함께 따라오곤 하는데, 이거야말로 참 잔인하고.


이런 생각들을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하고 있었거든. 그냥 문득 살짝 고개를 돌려봤어. 그랬더니 우리 집 고양이가 책상 위에 길게 누워서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거 있지? 가만히 눈을 맞췄어. 잔뜩 졸린 눈을 하고서는, 그 두 눈으로 나한테 말하고 있더라. '너를 너무 많이 좋아해.'


고양이는 말해, 눈으로. 솔직히, 그 말이 꼭 '너를 너무 많이 좋아해'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어쩜 내가 너무 지쳐서 멋대로 그리 해석해버린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알고 있어 난. 고양이가 눈으로 말을 건다는 걸. 그리고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돼.


사람도 사람마다 말의 방식이 다르잖아. 나에게 닿아있는 존재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닌데 그런 모오~든 존재들의 말의 방식을 내가 전부 헤아릴 순 없겠지? 하지만 오늘처럼 문득 고양이와 깊은 눈 맞춤을 하거나, 밤하늘 진하게 뜬 달의 하얀빛을 목격하고 감탄할 때면, 아... 수많은 존재들이 이미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나의 바깥에서 나 외의 존재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감각이 깨워져.


정말이지, 사람에게는 다른 존재가 필요해. 다른 존재의 말이 필요해. 그런 말들이 나와 너 사이의 경계선을 보여주고 그게 보일 때 되레 나라는 존재의 생김새가 확인되곤 하지. 너의 말들이 너의 경계를 넘어 나의 경계로 다가올 때 비로소 또렷해지는 거야. 서로의 존재가.


가끔 나의 선택과 그 결과들, 책임과 해석들이 벅차서 감당이 안될 때 말이야, 그럴 때 너무 쉽게 자존감을 운운하지 마.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지 마. 사람에게는 다른 존재가 필요해. 말을 걸어줄 다른 존재 말이야. 물론 고독과 외로움은 너를 너답게 빚어주겠지, 그렇지만 너무 오래 혼자일 필욘 없어. 고개를 조금만 돌려서 눈으로 말하는 고양이 같은, 다른 존재의 말의 방식에 귀 기울여봐. (나만 고양이 없으니까 안 되겠다고? 미안, 나는 고양이 두 마리나 있긴 해. 꼭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그러려면 차분하고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더라. 스스로가 미워질 때면 마음이 분주해질 거야. 미운 마음을 덜어내고 싶어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 사람은 급급해지기 마련이거든. 충분히 될 수 있는 대로 급급해하자.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스스로를 볶아댄 후에, 크게 숨 한번 내쉬고 그때 돌아봐도 돼. 세상 모든 것이 실은 너에게 이미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 늦지 않아 언제든. 


스스로에게 하사하는 조금 비싼 커피 한 잔, 얼굴도 모를 사람이 남겨놓은 벽의 낙서, 오래전 읽다가 팽개쳐둔 책의 몇 구절, 무심코 틀어놓은 TV 화면 속 흔한 예능 프로그램. 그 무엇이든 낭랑하게 너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아니면 내가 말해줄게 기꺼이. 괜찮아, 정말이야. 잘하고 있어.

너무 오래 혼자 이지마.





분홍신 - 아이유



https://youtu.be/C-Mxyvv0I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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