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묻는다. 말이 없다.
도시로 돌아와, 몇 주 만에 나의 동네를 오래 걸었다. 며칠 씩이고 드나들던 골목과 대로를 거니며 계절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새 못 보던 가게가 생겨난 것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아, 원래 여기가 무슨 가게였더라? 분명 익숙한 자리인데 한참 기억을 더듬어도 전에 뭘 하던 가게였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걷는 동안 그렇게 이전의 모습을 지우고 새로 자리한 가게들을 몇 군데 보았고, 번번이 원래 (몇 주전엔) 뭐하던 자리였는지 기억해내기를 실패했다.
봄이었다. 걷다 보면 더워서 입은 외투가 오버스럽게 느껴져 쓱 벗게 되지만 시간이 저녁으로 기울수록 제법 쌀쌀한 공기 탓에 다시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 아름아름 핀 벚꽃 송이들이 벌써부터 바람결을 타고 흐트러져 낙화하고 있었다.
저기 남쪽, 시골 우리 집엔 개도 고양이도 닭도 있었다. 그것들은 때가 되면 새끼를 낳고 알을 낳았다. 어린것들은 사람이고 동물이고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멍멍이도 야옹이도 병아리도 전부. 그렇게 작고 소중한 생명체의 온기와 꾸물거리는 몸짓은 온 맘을 부들부들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곤 했다. 그것들을 보며 줄곧 예쁘고 여린 봄 같다고 생각했다.
봄에는 예쁘게도 꽃이 핀다. 꽃송이는 한들한들 사람 마음을 들쑤시다가도 며칠 가지 않아 폴싹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꽃이 피어 아름답고 꽃이 져서 가슴 아린 계절이 나에게 봄이었다. 꽃이 피고 금세 지는, 그래서 잠시 아름다운 계절. 그런 봄을 누리고 있자면 퍽 설레다가도 생과 사를 똑똑히 목격하는 기분이 든다.
저기 남쪽, 우리 시골집의 갓 태어난 어린것들은 그렇게 기쁨으로 생을 얻었다가 이유 모를 병이나 사건으로 쉬이 죽곤 했다. 처음에는 이 어린것들의 잦은 죽음에, 어떤 노력에도 비껴갈 수 없는 그 필연 같은 죽음에 속상해지는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들 덕에 부들부들해졌던 마음은 얼른 허무하게 식어버려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슬픔과 미안한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 여러 해 우리 가족이 시골 동네 주민으로 살고서야 흔한 태어남과 죽음에 맘이 덜 흔들리게 되었다. 나고 죽는 것은 정말이지 도처에 있었다. 어떤 생은 순리였고, 어떤 죽음 역시 순리였다.
오랜만에 걷는 도시의 익숙한 거리에도 봄이 왔다. 영원히 찬란할 것만 같은 꽃잎들이 위태롭게 순간을 살고 있었다. 거리 사이사이엔 이제는 명을 다해 흔적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 사라진 가게들과, 그 자리 위에 새롭게 움튼 풋풋한 가게들이 보였다. 어딜 가든 정말이지 생과 사가 곁에 있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많은 것들이 나고, 죽고, 산다. 봄을 걸으며 꽃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왜 사느냐고. 꽃은 말이 없다. 아름아름 한들한들 부들부들... 지금 이 순간 피어남으로 활짝 웃어줄 뿐이었다. 나도 웃는다. 그냥 오늘을 또 걷는다. 살아감의 순리에 대해 헤아릴 재주가 없으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푸욱 생각하며 마냥 웃고 걸었다.
4월이 울고 있네 - 노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