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에게 느낀 아름다움에 대하여
지하철을 타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지상으로 올라와 창문으로 바깥 풍경이 비치곤 한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탄 그날도 깜깜한 땅 속을 달리던 열차가 머지않아 창밖으로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런 순간엔 나뿐만 아니라 같은 칸에 타고 있는 몇 사람들의 눈이 조금은 동그래진다. 창밖엔 봄이 와있었다. 이따금 푸릇한 나무나 벚꽃, 개나리도 보였다. 대체로 멋지게 자리 잡은 건물들이나 오래된 상가의 일면 그 사이사이에 겨우 조금의 자연이었지만 그들은 묘하게 조화로웠다. 도시의 봄이었다.
순간 아름답다- 느꼈다.
이 느낌은 퍽 낯설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도시가 괴팍하고 흉측하다고 느껴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뜻밖의 이 감정에 잠시 생각이 멈추었다. 감각을 더듬어 '방금 내가 느낀 게 그러니까, 아. 름. 답. 다. 라는 거야?' 의심하고 또 곱씹었다.
나는 서울이 싫었다. 물론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결국 또 살고 있지만 말이다. 서울의 땅은 비정했다. 우스겟 소리이자, 진실된 소리로 사람들은 으레 '서울은 돈 많으면 살기 좋은 곳이지' 하지 않는가. 나는 딱히 돈이 많아 본 적 없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우리 가족을 뱉어낸 모진 도시로 경험해서 그럴까. 내 눈에 서울은, 도시의 비정함과 무참함이 선명한 곳이었다.
말도 안 되게 나눠놓은 쪽방을, 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파는 도시. 옆집 노인의 안부를 궁금해할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곳. 저쪽 동네와 이쪽 동네가 하루에 벌고 쓰는 값의 차이가 무시무시한 도시.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삶이 앗아지는 세상. 공정이라는 말을 달아놓고 벌집 같은 공간에 청춘을 묵히게 하는 곳. 그러나 늘,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고, 누군가의 성공은 신화 같아서 되레 좌절을 쉽게 반복케 하는 곳. 물론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꼭 서울 한정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어디 어느 곳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 너무 못되게 묘사했나?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자유를 얻으면서도 탈 도시, 탈 국가의 삶을 살 수 있을지 궁리하는 나에게 늘 서울은 악당 같은 도시였다. 얼른 벗어나고 싶으니 도망치지 말고 계속 맞서 싸워 야만 하는 그런 땅.
그럼에도 오늘의 서울은 아름다웠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악당에게 느끼는 아름다움이라... 열차 창밖을 다시 들여다보며 '겨우 저만치의 자연이나 풍경에 마음이 물렁해진 건가?' 싶다가 다시 생각했다. 서울이 아름답다는 이 느낌에 대해서.
서울이 아름답다는 건, 말도 안 되게 나눠놓은 쪽방에서도 오늘을 꿋꿋하게 맞이하는 숨결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좌절을 쉽게 반복케 하는 도시지만, 내일을 믿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루를 일궈내는 곳이기도 했다. 다른 이의 안녕에 마음 쏟을 여유를 허락지 않는 팍팍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어떻게든 함께라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불을 켜고 모이는 사람들의 땅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서울이 아름답다는 건 비참하고 냉정한 도시의 이면에 그럼에도 지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도시가 여전히 악당 같았고, 살며 배운 것은 어디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터무니없는 구원이나 영웅의 등장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을 자기만의 희망으로 다시 일으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믿는다. 그런 삶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기에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열차는 다시 어둔 땅 속을 향해 달린다. 땅 밑 어느 곳에 나를 덜어내면 나는 나의 삶을 향해 걸어간다. 나도 서울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일까? 하면서. 조금은 이 도시를 밉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10CM,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