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을 지켜준
같은 이부자리에 같이 몸을 뻗고서 잠에 취한다. 나는 뒤척인다. 어김없이 밤은 길고 꿈은 사나우며 맘은 허무하다. 눈을 뜬다. 그러면 옆엔 길게 잠들어 있는 네가 있다. 나의 앙증맞은 고양이가 새근새근 숨 쉬고 있다. 적막한 나의 새벽을 춥지 않게 지켜준다. 고양이는, 그의 심장 소리는.
털이 북슬북슬하고 뜨끈하며 둥글넓적한 존재와 함께 보금자리를 공유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가 책상에 앉으면 책상 위에, 노트북을 만지면 노트북 위에, 침대에 누우면 가슴팍 위에. 어디에든 자기 무게를 실어 들러붙는 귀여운 존재. 좀만 쓰다듬어도 뽀얀 털이 흩날리는 보드라운 존재... 그 존재의 자그마한 심장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복이다. 그 세밀한 소리가 내 긴긴밤을 지켜준 것도 몇 해 째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녀석의 몸에 작은 말썽이 생겨 병원엘 갔다. 정말 오랜만의 내원이었다. 몇 년간 아픈 곳 없이 잘 지내주었는데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이 김에 건강 확인 한 번 해보자 싶었다.
병원에선 피검사 결과를 들려주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두 장의 사진이었는데, 아래에서 위를 찍은 모습과 옆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세세하게 장기들과 그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정가운데쯤 달걀 모양과 비슷하지만 더 자그마한 그것이 내 고양이 하리의 심장이었다. 선생님은 하리 심장 모양이 걱정할 것 없이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작아서 한 손에 움켜쥐고도 남을 것 같은 저 작은 동그라미. 저 작은 게 내 수많은 날들을 꽉 차도록 위로했더랬다. 눈물이 마를 날 없던 시절에도, 공허함에 채 움직일 수 없던 날에도, 이따금 밤이 길고 꿈이 사나워 허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던 어둠 속에서도... 어김없이 달려준 저 작은 심장 소리에 나는 살았다.
나는 살았다. 5킬로의 몸으로 나의 가슴팍을 짓누를 때면 솔직히는 무겁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너는 언제나 모든 무게를 다해 나에게 쏟아졌다. 모든 걸 다해서 날 믿어 주었다. 그러니까 네가 살아 심장을 콩콩대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았고, 거기엔 사랑이 있었다. 내가 받은 것과 줄 수 있게 된 것을 어떤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너의 살아있음이 사랑을 알게 한다. 우린 생을 서로에게 맡겼고 나는 나아감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답다. 살아있어서. 뛰고 있어서. 지독한 밤에도 평온한 밤에도 변함없이.
이렇게 소중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울컥하는 걸 겨우 참고 엑스레이 화면을 사진 찍어왔다. 두고두고 꺼내 볼 것이다. 다행히 하리는 큰 문제없이 말썽을 지나왔다. 여전히 꾹꾹이를 잘하고, 기분이 너무 좋으면 살큼 깨무는 고양이로 잘 지낸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너의 심장에 나의 밤을 기댄다. 앞으로도 쭉, 당연하게 네게 나의 밤을 맡기련다. 내 모든 밤에 너의 심장 소릴 들려주라. 우리 밤이 아름다울 수 있게. 삶을 또 믿어볼 수 있게.
위로 - 권진아
https://youtu.be/kdUe1xZh9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