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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May 12. 2022

할머니의 빨래집게

당신의 참견, 정(情)


깨끗이 빤 빨래에 바깥바람이 깃들면 포근한 엄마 냄새가 난다. 땅바닥에 딱 붙어 있는 나의 방엔 엄마 냄새로 마르는 빨래가 없었다. 볕도 바람도 넉넉지 않은 공간이다. 자주 걸었다. 몸에 바깥바람이 깃들면 나도 잘 마른빨래처럼 포근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여.


어느덧 햇수를 손가락으로 짚어 볼 시간만큼 동안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동네가 내어준 등허리를 꼼꼼히 밟고 다니며 어느 곳 하나 온전히 내 소유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집 마당 마냥 이곳을 잘 알게 되고 아끼게 되었다. 그렇게 걷고 걸으면서 가난해도 포근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얻었다.


내 영혼이 포근한 바람을 쐬고 와도 방 안 빨래는 여전히 아쉽게 마르고 있었고 다른 방도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문 앞에 빨랫대를 펼쳐 널기 시작했다.





나는 철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나오는 1  집에 살고 있었고 철문이 있긴 하나 1층의 복도는 야외나 다름없는 구조로 되어 . 원룸이나 빌라 건물에도 공동현관이  생긴 요즘 세상이지만 서울 구석구석엔 별의별 형태의 집이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이사를 왔을  도어록도  달린 열쇠 문이었으니... 1   집이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옷가지를 구경시켜준다는   걸리긴 했지만  좋은   시간만 바깥에 널어둬도 완전히 다르게 마른 빨래의 감촉과 온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바깥에 빨래 널기 가장 적기인 봄이 왔다. 얼마 전부터 쉬는 날이면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리고 문 앞 복도에 널어두었다. 봄바람을 먹은 옷가지를 거둬드리면 행복해진다. 빨래 만족도가 오르는 계절이다. 물론 가볍거나 부드러운 소재의 옷은 어느새 바닥에 툭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탁탁 몇 번 털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어제 걷지 못한 빨랫가지 군데군데에 못 보던 빨래집게가 집혀 있었다. 나에겐 없는 아이템인데? 빨.래.집.게.





내 옆 옆 집엔 이 건물 주인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할머니의 딸과 가족들이 작년에 이사를 와 꼭대기 층에 살고 있지만 할머닌 다리가 아프셔서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드시니 1층 집에 계속 계셨다.


할머니는 가끔 만두나 떡볶이 같은 음식을 나누어주셨다. 어떤 날엔 여자 혼자 살기 힘들죠? 묻기도 하셨고 우리 집 강아지 먹으라고 소시지를 내미신 적도 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진 않았지만 적당히 가까운 이웃이었다. 할머니의 어떤 질문이나 나눔들은 참견이 되기도 했지만 그 속의 다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웃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 맘 구석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빨래집게를 본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집엔 날 반기는 반려 동물이 세 마리나 있었지만 하루에 치인 날엔 누구라도 마중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따금 든다. 그런데 그날은 할머니의 빨래집게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내 빨래에 툭툭 집게를 집어 놓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그 무서운 것, 정(情). 때문에 나는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정(情)은 관심과 오지랖이 적당하게 뒤섞인,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견뎌낸 사람의 든든한 기운으로 다가와 내 마음에 차올랐다. 해도 잘 안 드는 작은 방에 사는 이웃집 젊은 여자가 어떻게든 빨래에 바람을 맞혀보겠다고 애쓰는 그 마음 안에 담긴 작은 서글픔을 할머니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신 걸까.





빨래를 걷어 정리하고서 빨래집게는 모아서 할머니 집 앞 화분 옆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 할머니는 그 집게들, 나 쓰라는 듯이 우리 집 현관문 옆 작은 창문가에 다시 올려두셨다. 한 번 더 웃게 된다. 나는 이런 참견이 좋다.


가난해도 맘이 풍요롭고 포근해질 수 있는 건 동네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 시간만큼 이곳에서 나눈 마음들이 있어서다. 어쩌면 나는 이 동네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알면 알수록 좋아진다는 게 사랑의 증거 아닌가. 내 이러함엔 이웃집 할머니의 참견이 적지 않는 몫을 한다.


나는 자꾸 잘 마른빨래처럼 기분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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