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like 호빵맨
때로는 주기만 하는 것이, 나만 마음이 넘치는 것이 억울할 만큼 지치거나 외로웠다.
나는 늘 정이 많고 어디에든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무겁고 뜨거운 그런 사람. 어쩌면, 사랑을 되돌려 받고 싶어서 다른 이들을 사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나는 당연스럽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그런데 가끔은 그것이 참 외롭고, 외로웠다. 숱한 관계의 안녕을 경험하며 주는 것에 익숙한 나를 당연하게 여기고 내 마음을 하찮게 보는 이들이 없지 않더라는 것을 많이도 마주했다.
물론 상대방이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란 걸 안다.(악의를 가진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한쪽이 잘 주다 보니 한쪽은 자꾸 받게 되는, 불균형한 상태가 관계의 '당연'이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 나는 끝내 상처받았다.
나는 왜 자꾸 호구를 자처할까?
이런 자책감이 줄곧 머리를 지배했고 나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생각과 감정에 잠식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러길 반복하며 끝내 이 호구 같은 사랑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눠주는 게, 참아주는 게, 알아주는 게, 져주는 게 그게 연약해서가 아니라, 바보라서가 아니라, 관계의 '을'이라서가 아니라, 사실 힘이 세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그런 마음이 들자,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호빵맨'이 떠올랐다.
호빵맨은 항상 위험에 처하거나 기력을 잃어가는 친구들에게 자기 머리를 떼어서 나눠준다. 호빵맨 머리의 일부분(=호빵)을 받아먹은 친구들은 마법처럼 금세 기운을 차린다.
이렇게 묘사하니까 왠지 잔인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결국 자기 머리가 온전치 않게 된 호빵맨은 세균맨과의 싸움에서 밀려 위기에 빠져버린다. 이런 호구 호빵맨. 쯧쯧...
그렇게 위기일발의 상황이 이어지지만 호빵맨이 당할 뻔하는 결정적 순간, 어디선가 새로운 호빵 머리가 날아온다. 휘리릭! 새로운 호빵이 머리로 장착되면 호빵맨은 힘을 얻고 무적이 된다. 그럼 세균맨은 호빵 펀치 한 방으로 나가떨어진다.
호빵맨에게는 매번 그를 위해 새로운 호빵을 구워주는 잼 아저씨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호빵맨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 머리가 필요한 친구들에게 호빵을 조금 떼주어도 괜찮다는 걸. 비록 내가 위기에 처할 수 있지만, 언제나 새 머리를 만들어줄 든든한 잼 아저씨가 늘 거기에 있다는 것을.
호빵맨은 그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기꺼이, 넉넉히, 자기 일부를 나누어줄 수 있다.
마음을 더 많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내 마음을 여기까지 써도, 그래서 내가 되레 상처받게 된다 해도 거뜬히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아는 거고 믿는 거다.
물론 모두에게 호빵맨처럼 항상 곁에 잼 아저씨 같은 존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기꺼이 마음 한쪽을 내어주고 보듬어주었던 사람들과 보낸 시간과 공간의 경험이 내 마음의 깊이와 너비를 확장하고 지탱해주는 것이다.
난 그런 따뜻한 경험도 없고, 마음이 커다란 것도 아닌데 그냥 자발적 호구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에이~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삶에서 언젠가 한 번쯤 사랑받았다.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아주 짧고 작은 돌멩이나 별 같은 순간이어서 사랑이라 말하기 하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내면으로 가라앉아 무엇보다 묵직하고 뜨겁게 기록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눠주는 작은 호의에 마음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머리가 이런 사건들을 별 것 아닌 일상 정도로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 마음은 그런 순간들을 가장 내밀한 곳에 보관하고 마음이 추워질 때마다 꺼내어본다.
자꾸 사랑을 내어주는 호구들은 사실, 사랑받은 작은 순간들을 모아서 커다래진 자기 마음의 너비와 깊이를 가늠할 줄 아는 지혜와 그 힘을 믿는 용기를 가졌다.
그러니까 호구지만 호구가 아니다.
근데, 솔직히 나는 이런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상처를 받는다. 여전히 아등바등한다. 어떨 땐 상처 주는 이에게 힘껏 부딪쳤지만 어떨 땐 상대를 외면하고 떠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요령이 있다가도 요령이 없는 사람처럼 관계를 만들어가며 결국에 나는 더 다정해졌다.
이 말은, 나는 계속 더 호구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젠 나의 다정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든 상관이 없어졌다. 다정할 수 있음은 내 마음이 튼튼하고 힘이 세기 때문이란 걸 알기에. 그런 나를 믿기에.
이제 나는 내 다정으로 나를 채운다.
여전히 당신에게 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재어보지도, 따져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위한다.
사랑은 꼭 돌려받지 않아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나에게 넘치도록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을 줄 것이다. 언제나처럼 내가 가진 다정의 무게로 나는 당신에게 잔뜩 사랑을 말할 것이다.
이제 그 사랑을 어떻게 여길지는 당신 몫으로 남긴다. 호구라 불러도 좋다. 내 마음은 사랑을 건넨 순간 이미 꽉 채워졌으니.
My name is yozoh - 요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