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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May 08. 2022

우리 형이 너 좋아해서 그랬대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


복도에는 신발주머니 걸이가 줄지어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신발주머니에 실내화를 넣고 다녔다. 학교에 오면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은 후 신고 온 신발은 신발주머니에 담아서 자기 반 앞의 신발주머니 걸이에 걸어뒀다. 이른 아침, 집에서 출발해서 교실까지 도착하는 과정의 끝에는 항상 신발주머니를 거는 모습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 반 앞 신발주머니 걸이에 마주 선 나는 손에 든 신발주머니를 내 자리에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나는 교실 뒷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반 아이들이 도착해 아무렇지 않게 교실로 들어갔지만 나는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그런 나에게 한 아이가 뭐하느냐고 물어봤다. 도이라는 여자아이였는데 또래보다 덩치가 있는 편이었고 아토피로 고생을 한 흔적이 보이는 아이였던 것이 기억난다. 걱정스레 여기서 뭐 하느냐고, 왜 들어가질 않냐고 물어보던 도이.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는 정말 교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오고 있었다. 좀 있으면 선생님도 오실테고, 지각하지 않으려면 이젠 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문턱을 넘어 교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말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정말. 난감하고 곤란해진 나는 눈물이 났다. 교실 뒷문에 서서 어쩔 줄을 모르고 울먹거렸다.


얼마  담임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교실 앞에서 서성거리며 우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모습을 이상히 여긴 도이가 선생님께  상황을 전한 듯했다.  후로 어떻게 교실에 들어갔고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질 않는다. 조각난 기억을 따라가 보면 그날로부터 얼마가 지난 어느 , 하굣길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 반에서 나를 괴롭히던 남자아이의 쌍둥이 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녀석이 내 옆을 지나치며 나에게 무심코 툭 던진 한 마디.


- 우리 형이 너 좋아해서 그랬대.





어딘가 변명처럼 들리던 그 한 마디. 그 녀석의 '우리 형'은 줄곧 나를 괴롭혀왔다. 그 남자애는 같은 반 여자애 두 명과 함께 셋이서 나를 못살게 굴었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 자세한 건 잘 기억나질 않지만 불편하고 무섭고 싫었다는 감정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그 애가 나를 좋아해서 그랬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예쁜 마음인데, 내가 느낀 마음은 공포와 괴로움뿐이었다. 즐거움도 고마움도 행복함도 하나 없이 순전히 무서웠다. 좋아함이란 원래 이런 건가? 어린 나의 머리로는 말과 행동이 마음과 맞아떨어지지가 않았던 그 괴리가 소화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 '그래, 어린애였으니까... 짓궂게 표현한 걸 수도 있지'라고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체기를 느낀다. 교실 앞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울먹이던 그날의 마음이 선명해진다. 세계의 전부가 집과 학교였을 어린아이에게 그중 하나인 학교라는 세계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일인가. 분명한 폭력이었다. 어려도, 서툴러도, 누군가 나에게 함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좋아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워도 이해받거나 용서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데이트 폭력이나 가스 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얽히고설키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힘을 나눠가지게 된다.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아는 만큼 그를 잘 헤아리고 사랑해줄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날카로운 칼로 그를 찌를 수도 있게 된다. 그것이 힘이다. 사람은 사랑이란 명분으로 상대에게 별 짓을 다 할 수도 있는 존재다. 어떤 식으로든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런 말들이 사용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데이트 폭력도, 가스 라이팅도 항상 있어왔을 테다. 다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민감하고 피곤하게 이런 역동을 감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다행을 표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 그 민낯들이 얼마만큼 오래 가슴에 남아 삶을 무너뜨리는지.... 그 경험 뒤에 숨은 사람들의 '그럴만하니 그랬겠지' 하는 2차 가해가 얼마나 살아갈 틈을 잃게 만드는지... 생각만으로도 단단히 얹힌 듯 체기가 올라와서 어지러워진다.


어렸으니, 좋아하는 마음에 괜히 괴롭히고 장난치고 그랬다는 누군가의 경험담은 머리론 대강 상황 파악이 되지만 나로선 도저히 그 심리가 연결이 안 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연결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필요한 것은 감각이다. 폭력에 대한 감각. '널 사랑해서(좋아해서) 그랬어'라는 말을 하는 비겁하고 저속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나의 휘두름을 좋아함의 표현으로 일삼으면서도 잘못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폭력에 대한 세심한 감각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날 때리고 있나 살피는 만큼 내가 누굴 때리고 있진 않나 살피는 것이기도 해야 한다(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직도 내 마음속엔 교실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울먹이는 어린아이가 서있다. 명치를 꽉 조여 오는 감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헤아려본다. 혹여 내 마음을 나누는 일이 누군가의 세계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되진 않을까 하여 걱정이 앞선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노라면... 그 어린 날 내가 폭력으로부터 빼앗긴 것은 순전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인 것 같다. 폭력은 흔적이 남겨진다.


그래도, 괜찮다. 알았으니까.

내 마음의 주인은 오직 나뿐이니까. 이젠 내가 상처받을지 말지 정할 수 있으니까.

그럴 수 있을 만큼 맘이 자랐다. 살며 받은 사랑 안에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참 다행이다. 그럴 수 있도록 내 마음에 사랑을 모아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나 역시 순전하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서, 어린 날 교실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정말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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