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에 멈춰 서서
오래간만이었다. 신촌을 걸었다. 사람이 많았고 몇 년 전 언젠가로 돌아간 듯 거리 군데군데에 스피커나 마이크를 들고 나온 이들이 보였다. 그들을 에워싼 사람들은 아직까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얼추, 우리가 기억하던 일상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덩달아 마음이 부풀었다.
우리가 발걸음을 멈춘 곳엔 우리와 그 밖에 없었다. 셋 뿐이었다. 공연자와 관람자. 우리의 역할에 맞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서툰 노래와 능숙한 연주를 들었다. 놀랍도록 나의 플레이 리스트와 겹쳐있는 곡들. 덩달아 마음이 부풀었다. 첨 보는 사람에겐 상냥치 않은 나였지만 음악 때문이었을까 꽃나무 때문이었을까 그의 쑥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열렬한 팬이 되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쳐주었다.
이제와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는 노래를 못했다. 떨려서인지, 주종목이 기타나 건반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노랠 썩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님 비주류의 선곡 때문이었을까 꽤 시간이 흘렀지만 관객은 여전히 우리뿐이었고 휙 떠나버리기가 미안해서 조금 더 머물러 청중이 되어주었다.
궁금했다. 그는 왜 노래를 해야만 했을까? 서울의 길거리 한복판에 악기를 설치하고 노래를 골라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궁금했다. 어떤 것이 그를 노래하게 만들까. 그 어떤 것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무대 체질이라기엔 쑥스러워하는 티가 폴폴 났다. 나보다 한 열 살쯤은 어려 보이는, 그에게 겨우 젊고 어리다는 이유가 노랠 부르는 동기는 아니었으면 바라게 된다. 조금 더 순수하고 진실되되, 단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바람을 담아 믿어본다.
나에게도 해야만 했던 것들이 있었다. 사실 그런 게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잊음이 문제였을까?
- 넌 왜 그래? 그냥 대충 좀 살면 안 되겠어?
라는 말. 나는 알았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이런 종류의 잔소리엔 얼마만큼의 걱정이 담겨있는지. 그럼에도 또 그냥 끄덕이지를 못하고 답했다.
- 그게 안돼, 내가... 그게 안되니까 힘든 거야.
그날, 신촌에서 그와 나는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동안을 함께 했다. 아마도 그를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우연한 잠시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래 그를 생각한다. 무엇이 그를 노래하게 했을까? 그는 왜 노래해야 했을까? 그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
나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오래전 그 마음들이 무엇이었나... 마음의 서랍을 열어본다. 그냥 좀 대충, 가볍게, 그게 안돼서 멈춰버린 지금 나에겐...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그 무엇이 필요한 것만 같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불러줘서 고마웠어요
https://youtu.be/yPdUVGhmX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