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귀여운 아이들이 썸네일로 있는 가장 최신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끔벅끔벅-
내가 잘못봤나 하고 댓글창 스크롤을 계속 내렸지만 내용은 변함없었다. 창 끝까지 내리고서야 ‘아, 결국 떠나셨구나.’하고 실감했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계속 봤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A씨의 블로그를 발견한건 우연이었다.
조혈모세포이식과 관련된 것을 검색하다 꽤나 상단에 위치한 게시글을 클릭하게 됐는데 그게 A씨가 관리하는 블로그였다. 이식병동에는 장기환자가 많다보니 블로그를 하거나 책을 쓰는 환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A씨가 이렇게 열심히 운영하는지는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쾌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보이는 프로필과 대문
백혈병을 이겨내겠다는 강인한 의지
합병증과 싸우며 힘든 와중에도 늘 힘차게 웃고있는 얼굴
A씨는 내가 응원하던 때의 모습 그대로 열심히 백혈병과 싸우고 있었다.
블로그에는 그간의 투병일기가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하나씩 읽으며 내가 A씨를 응원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일하며 만나는 모든 환자들을 응원하지만, A씨는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쓰이고 잊히지 않는 분이었다. 몇몇 게시글에는 배우자와 아이들의 사진이 함께 있어 꼭 잘돼서 가족들과 오래 행복했으면, 그리고 병원에 다시 오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년 후, 고인의 명복을 비는 댓글로 가득한, A씨의 또다른 sns 게시글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며, 누군가는 응원했던 sns계정주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닿지못할 편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조금 멍했다. 그러다 사진 속 A씨의 어린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얘네들은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까. 죽음을 알만한 나이려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마주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적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투병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기에 모든 가족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어머니가 그러했다. 36살의 젊다면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으니…게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두 딸까지 있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하며 무너지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와 반대로 당시 8살이었던 나는 장례식 3일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와닿지 않아서였을까? 후에 어머니가 ‘동생은 엄청 울던데 너는 희안하게 안 울더라. 왜 그랬어?’라고 물어봤는데…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영원한 이별이란걸 모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아니었을까? 나랑 놀아주던 아버지, 아침밥을 함께 먹던, 보라색 승용차를 운전하던 아버지 등 모든 기억의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간은 잘만 흘렀고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일상의 삶에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몇 장의 사진 외에는 더 이상 추억할 게 남아있지 않단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함께했던 추억을 묻어두기만 해서였을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 동안 펑펑 울었다. 좀 더 열심히 기억할걸…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7년만의 일이었다.
A씨의 아이들도 아마 죽음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A씨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또 같은 이별의 경험자로서 꼭 전해주고 싶다. 나중에 죽음이 뭔지 깨달았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훅 다가왔을때, 그 때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슬픔에 잠기는 대신 A씨가 남겨놓은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보고 또 보며 행복하게 기억해주기를, 후회되는 이별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