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급성 골수성 백혈병 때문에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러 입원한 환자가 병을 낫게 해주는 물이라며 생수병을 꺼냈다. 처음 보는 라벨지. 일반 생수통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양새에 투명한 물이 담겨있었다.
"이거 한 병에 20만 원이라고!"
C 씨가 자랑스럽게 검지와 중지를 펴며 숫자 '2'를 강조하며 말했다. 순간 나는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뭐가 얼마라고?
"어렵게 구한 거야. "
라며 자랑스럽게 생수병뚜껑을 딴 C 씨는 그것이 마치 성수인 것처럼 꿀꺽꿀꺽 삼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당황해서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금세 500ml짜리 하나를 다 비운 C 씨는 희망의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아마 복잡 미묘했을 것이다. 이걸 말려야 하나? 근데 뭐라고 말해? 몸에 해로운 게 아니라면 꼭 말려야 할까? 등등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다.
하루에 2L씩 마신다고 하면 80만 원, 한 달 입원한다 치면 2400만 원...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과학적 근거도, 의학적 검증도 없는 단지 물일 뿐인데 마치 기적의 치료제인양 포장되며 누군가에게 희망으로써 팔리고 있다니. 21세기 현대의학을 무시하는 '기적의 물'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것을 티 낸다면 환자와 나의 라포(rapport)는 깨지고 그는 나의 간호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C 씨의 허황된 기적을 말렸어야 하나? 하지만 그것이 '독약'이 아니라면 병의 완치를 바라는 C 씨에게는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의미의 '기적'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낯설고 불량한 예후의 진단을 받은 C 씨 같은 사람에게 과학적 설명이나 의학적 수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다. 예로, 넷플릭스 <APPLE CIDER VINEGAR>에서 소개된 '벨 깁슨(Belle Gibson)이라는 여자는 C 씨 같은 암 환자, 시한부 환자들에게 본인의 말기 뇌암 극복 스토리를 팔며 돈을 벌었다. 항암치료 대신 자연치유법과 건강식을 택해 건강해졌다는 것인데,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건강이 간절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고 벨 깁슨은 그들에게 '기적'이 되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치유법에 열광했고 그녀를 따라 현대 의학 치료를 거부한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C 씨는 이들과는 달리 모든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현대 의학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신성한 물로 채우고 있었다. 간호사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하지만 그것이 C 씨에게 해악이 아니라면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상당한 돈은 잃겠지만).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그의 마음을 나무라기에 그는 현대의학의 치료와 기적의 치료 모두에 열심이었다. 그것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면 그것으로 기적의 물은 쓸모를 다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절망 앞에서 언제나 기적을 갈망한다. 간호사로서는 그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생명을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작은 응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삭막한 병원 안에서 시들어가는 환자들의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작은 기적을, 설령 바라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열심히 바랐던 그 간절함을, 오늘도 나는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