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입원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자. 병동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거의 감옥 같은 생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람들은 태블릿, 노트북, 책 몇 권... 가끔 젊은 환자들은 닌텐도게임기도 들고 온다. 아무래도 병원생활이다 보니 침대에 가만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들고 오는 듯하다. 하지만 D 씨는 조금 달랐다.
“나 O월 OO일에 퇴원할 거예요.”
방금 막 입원한 그가 꺼낸 말이었다.
“저희는 수술처럼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퇴원일을 정할 수 없어요.”
그래도 꼭 그날에 퇴원을 해야 한단다. 알고 보니 막내딸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 꼭 집에 가야 한단 것이었다. 하지만 항암을 하고 면역력이 회복되는 것이 날짜에 맞춰 딱딱되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하는 나도, 교수님도 난감해졌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로 퇴원하는 것은 힘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장에 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살피던 D 씨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그럴 줄 알고 챙겨 왔지.”
그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근력운동밴드였다. 그리고 그걸 침대난간에 묶어 고정시키고 다리에 끼우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완벽한 홈트레이닝… 아니, 병원트레이닝에 나는 놀라며 물었다.
“원래 운동을 자주 하세요?”
“자주 하지. 그리고 이제 더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빨리 나갈 수 있지 않겠어?”
열심히 설명한 보람이 없게 D 씨는 꼭 제 날짜에 맞춰 퇴원하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했다. 입원 이후로 D 씨의 병실은 작은 체육관이 되었다. 침대에서 몇 세트의 운동이 끝나면 무릎 위 밴드스쾃. 병동 복도 10,000걸음에 윗몸일으키기까지. 점점 다채로워지는 운동방식에 놀람을 넘어 존경심까지 느낄 정도로 열심히였다. 면역력 저하 시기일 때도 남들은 다 힘없이 누워있을 때 그는 꽤나 많은 하루 운동 할당량을 끝낸 후에야 자리에 누웠다.
"사실은 내 딸이 40이 넘었어요. 결혼 곧 죽어도 안 하겠다는 거 이제라도 짝 찾아서 간다니 얼마나 예뻐요. 그러니 나도 힘내야지."
운동을 한다고 면역수치가 더 올라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D 씨는 체력 회복에 열심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를 포함해 병동의 모든 선생님들은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몇 월 며칠까지는 무조건 퇴원해야 한다며 입원 때부터 못 박는 환자들은 제법 되었지만 D 씨처럼 적극적으로 온몸으로 노력하는 분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D 씨의 그러한 노력에 보답하듯 (희망일보다 며칠 미뤄지긴 했지만) 그는 결혼예정일 전에 퇴원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딸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는 그의 마지막 인사. 그동안 D 씨가 막내딸을 생각하며 보낸 약 한 달간의 병상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결혼 축하드린다고, 건강히 잘 사시라는 말에 웃으며 떠난 D 씨. 환하게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ㅡ아, 부모의 사랑은 참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