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원에 헌혈을 하러 갈 때면 'X형 혈액 급구!'라는 문구가 늘 보인다. 부족한 혈액형은 매번 다를지언정 늘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나는 고등학생 때 헌혈을 시작했지만 그 이유가 파리바게트 이용권이나 영화관람권을 얻기 위함이었고, 그마저도 헌혈가능주기를 맞춘 것은 아니라 1년에 한 번 하면 많이 하는 거였다. 대학생 때는 과제와 시험에 치여 헌혈을 하자!라는 생각을 못했고, 직장인이 되고서는 삼교대로 인한 급격한 컨디션 저하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고등학생 때 헌혈을 제일 열심히 했는데, 사실 그때는 귀찮다고 밥을 잘 안 챙겨 먹고 다니던 때였다. 그래서 몸무게가 헌혈 기준 미달이었던 적도 있었고, 혈색소가 부족해 거절당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자 나는 혈액원에 가기 하루~이틀 전부터 끼니마다 우유, 계란, 김치를 열심히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 헌혈 한 번을 하겠다고 평소에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애가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고 있으니 엄마는 기가 찼을 것이다. 얘기를 들은 친구들도 왜 그렇게까지 헌혈을 하냐고 궁금해했는데, 음. 앞서 언급한 속물적인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그래도 이유다운 이유를 꼽자면 '인류애'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땐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다 같이 즐거웠으면 하고 바랐다. 사춘기소녀의 이상적인 꿈이랄까. 하지만 헌혈을 통해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가장 최근 2024년 대한적십자사의 통계를 보면, 1년 동안의 헌혈 건수는 약 2,855,540건이고 인구 대비 헌혈률은 약 5.58%라고 한다. 이걸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대한민국 인구를 약 5,100만 명으로 계산했을 때 전체 국민 1명 당 1년에 평균 약 0.06회의 헌혈을 하는 셈이다. 어렸던 나는, 혈액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많은데 혈액은 계속 부족하다는 슬픈 현실을 마주했고, 혈액종양병동 간호사로 일하면서는 더욱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