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나면 거실 창문을 닫는다. 아니 닫아야 한다.
위층 할머니는 비만 오면 어김없이 베란다청소를 하신다. 할머니가 창밖으로 힘차게 뿌리신 물과 먼지 등등이 우리 집으로 들이닥친다. 베란다 확장을 한 우리 집은 할머니가 물 뿌리시는 그 위치가 베란다가 아닌 거실의 끝부분이다. 걷어 놓은 빨래라도 그 자리에 던져놓았다면 창문 닫기를 더 서둘러야 한다. 할머니의 베란다를 청소한 물이 우리 집 거실로 들이닥치는 걸 원치 않기에 비소식이 있으면 다른 창문보다 이 창문을 사수하느라 예민하다.
이 집으로 이사 온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한 번도 말씀드려 본 적이 없다. 뭔가 할머니만의 기쁨인 것 같고 비 오는 날의 행사이고 루틴인데 저희 집으로 물이 들어오니 하지 말아 주세요 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비가 오면 문을 닫으면 되지 하고 살았는데 가끔은 방충망에 붙은 건더기(?) 들을 보면 말씀을 드려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솔직히 말씀드릴 자신이 더 없어졌다.
할머니에게 반갑지 않은 치매라는 친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오며 가며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드려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시는 할머니를 뵈니 마음이 아프기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 물 튀는 거, 먼지 묻는 게 뭐 대수라고 참아보자며 나를 다독인다.
하루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러 나갔는데 방충망에 윗집에서 내려온 건더기들이 붙어있는 걸 보며 90세가 넘으신 할머니에게 비 오는 날의 베란다 청소는 어떤 의미인가 궁금해졌다.
젊은 시절 바지런하게 살림을 다독이던 주부의 습관일까. 베란다 창틀의 먼지까지도 용납 못하는 할머니의 깔끔함인가.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은 치매가 찾아와도 남는가 보다 신기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베란다 청소를 하실 정도의 체력이 되신다니 다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먼 훗날 나이가 많이 든 나는 어떤 습관을 지키고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싫지만 극단적으로 치매가 와도 잃지 않을 습관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뭔진 몰라도 살림의 한 종류는 아닐 거 같다. 살림을 그리 열심히 하는 주부는 아니기에.
읽고 쓰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내 몸이 기억해 주려나.
(이미지 출처_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