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동물의 숲
나와 두 아들이 1년 넘게 꾸준히, 열심히, 애정을 가지고 하고 있는 게임이다.
줄여서 '모동숲'이라 부르는 이 게임은 섬에서 동물 친구들과 살면서 집도 꾸미고, 꽃도 심고, 과일도 따고 낚시도 하는 섬생활 게임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꽃도 피고 단풍도 지고 눈도 내리고, 힘껏 달리면 장수풍뎅이가 놀라 날아가는 디테일도 있고, 계절별 이벤트도 끊이질 않아서 지루할 틈이 없다.(어떤 게임이 지루하겠냐만은)
참 재미있는 것은 나와 아이들의 게임 스타일이 극명히 갈린다는 점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상어를 낚아서 팔고,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더 물건들을 담고자 필요한 도구 외에는 늘 비우고 다닌다. 또 '너굴'이라는 섬을 관리하는 너구리가 있는데, 대출을 해줄 테니 집을 넓히라는 달콤한 유혹을 하는데 그걸 못 참고 가장 큰 집을 갖기 위해 대출도 최대로 받았다. 대출 이자가 있진 않으나 악착같이 대출을 갚고자 애쓰고 있다. (아이들이 제일 이해 못 하는 부분이다. 대출 안 갚아도 되는데 왜 그래?)
이런 내가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보고 있으면 잔소리가 쉼 없이 나온다.
"주머니는 늘 비우고 다녀야지 그래야 하나라도 더 줍지."
"도끼랑 삽은 두 개씩은 가지고 다니는 게 좋아."
"옷은 왜 자꾸 사 입어 돈 아깝게. 잡초 많이 났다 얼른 뽑아."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작은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 이제(게임 속에서) 뭐 하면 될까?"
이 상황을 계속 지켜보던 큰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이거 게임이잖아. 그냥 ㅇㅇ이 하고 싶은 대로 두면 안돼?
재밌으려고 하는 게임인데 자꾸 엄마가 뭐라고 하니까 재미 없어지는 거 같아."
아차.
그제야 작은 아이 표정을 살피니, 수학 연산 문제집 풀 때 표정이랑 똑같다. 엄마가 미안해. 재빠른 사과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게임을 하다가 문득 아이들 공부시킬 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글씨 똑바로 써야지."
"오늘은 여기부터 여기까지 풀어."
게임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재미가 없어지는데 공부는 오죽할까. 물론 공부를 게임처럼 재밌게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하게끔 유도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얼마 후 어쩌다가 아이의 계정으로 들어가 작은 아이의 주머니 속을 보게 되었다.
하. 하고 혼자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홉 짤 아가의 주머니에는 풍선, 소프트아이스크림, 폭죽등이 들어있었다. 엄마 기준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인데, 우리 아가는 이게 소중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하며 미안했다 진심으로. 이런 아이에게 게임에서도 열심히 돈을 벌라고, 잡초를 뽑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라고 다그쳤던 게 너무 미안했다.
큰 아이는 또 어떠한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라서 그런지 게임 속 본인 캐릭터의 헤어스타일을 요리조리 바꿔보고, 옷을 사입히느라 돈을 엄청 썼다. (물론 게임 속 돈이다) 어느 날은 TV에서 본 잘생긴 박서준 아저씨랑 헤어스타일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그 헤어스타일 찾느라 무척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 그랬니 하고 영혼 없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내 캐릭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헤어스타일이 똑같다)
모동숲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흘깃 보고 간 큰아이가 자기 전 한마디 한다.
엄마도 이제 게임을 즐겨. 게임 속에서 일만 하지 말고.
(응, 엄마도 즐기고 있어 꽃 심으면서)
(이미지 출처_닌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