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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랬구나 Oct 28. 2023

나 지금 뭐 해야 하나

갑자기 주어진 2시간의 자유시간에 우왕좌왕하다

토요일이지만 남편이 아침 일찍 일을 보러 나갔다.

아, 이 녀석들과 나 셋뿐이다.


나는 우리 아들들을 몹시, 상당히, 매우, 많이 사랑하지만

지금 나는 몹시, 상당히, 매우, 많이 힘들다.


특히나 첫째가 지난주는 독감으로 수, 목, 금 내리 3일을 등교하지 않았던 터라

이미 나의 스트레스는 찰랑찰랑 차올랐는데 토요일까지 이 녀석들과 지지고 볶으려니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더구나 독감이어도 컨디션 좋은 아들과는 달리 나는 가래와 기침으로 죽을 맛이다.

감기약과 카페인이라는 독한 조합으로 오전시간을 버티고,

먹깨비들 점심 먹이고, 틈틈이 빨래 돌리고, 널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타나셨다.


나의 구세주. 남편!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축구하러 나가자 하였고 두 아이들은 흔쾌히 따라나섰다.

같이 가서 차에라도 앉아 있어 달라는 둘째의 부탁에 살짝 흔들렸지만

축구공을 부지런이 주워오는 내 모습이 그려져서 고개를 저었다.



세 남자가 퇴장하고 홀로 남은 집.

고요하다. 아 얼마나 그리던 평화이자 고요함인가.


아이들이 부산스레 옷을 입는 중에도 거실 바닥에서 잠이 솔솔 왔는데

세 남자가 나가자마자 눈이 반짝 떠진다.

무얼 해야 이 두 시간을 알차게 쓸까. 마음이 급하다.


마저 잠을 잘까. 드라마를 볼까? 첫째 옷을 사야 하는데 인터넷 쇼핑을 할까?

브런치에 글을 쓸까? 자려고 누웠다가 자기엔 시간이 아깝고, 쇼핑몰 장바구니에 아이옷을 담아 놨으나 본인이 결정을 해야 할 것 같고. 아까운 시간만 간다.


우왕좌왕하다 아! 이거다 싶어서 주방에 아이들 몰래 숨겨 둔 나의 단골 집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든다.

자꾸 뚠뚠해지는 아이들에게 단것을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다 보니 나 역시 아이들 볼 때 먹을 수 없어서 숨겨뒀던 것인데 맘 편하게 사탕이나 먹어보자 하고 꺼내본다.


알록달록하니 참으로 예쁘기도 하다.

(원래는 더 예쁜 곰돌이인데 이건 서비스로 받은 약간 뭉개진 곰돌이다)


사탕을 먹으며 글을 쓰고 있노라니, 자꾸 내가 둘째 학원 픽업 가느라 혼자 있을 때 과자를 먹는 첫째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아들도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무얼 하면 좋을까 얼마나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할는지. 아니면 나보다는 계획성이 있는 아이이니 미리 다 계획이 있나?


내가 추측하는 바로는 아이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과자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것 같다.

돌아오면 후다닥 태블릿 PC를 끄는 모습과 거실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보면 모를 수도 없거니와 우리 아들은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이의 귀여운 일탈을 모르는 척해준다.


아이들 미용실을 예약해 놔서 6시에 미용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재 시각 오후 5시 24분. 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나의 자유시간.

그래도 브런치에 글 하나 썼더니 기분이 좋다.


(대문사진_픽사베이, 본문사진_본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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